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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담 Sep 05. 2020

낭만이 필요해

스물다섯 살에 나는 내가 무언가 되어있을 줄 알았다.


 '당장 하고 싶은 게 없으면 일단 열심히만 사세요. 그러다 보면 길이 보일 겁니다.'


 어제 강의를 듣는 도중 한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다. 화상회의로 많은 동기들이 함께 듣고 있었는데, 나는 그게 꼭 나한테 하는 말인 것만 같았다.


 한 가지도 쉽지 않은 날이 있다. 평소처럼 일어나 노트북을 켜고 강의를 듣고 점심을 먹고 그러다 또 강의를 듣고 그러다 해가 지는 보통의 날이 유난히도 버겁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나이가 들고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이 되면 열심히 살면 어느 정도 미래에 대한 길이 보일 줄 알았다. 그저 열심히 살았으니, 매 순간 나는 내 삶에 최선이었으니, 무언가 되어있을 줄 알았다. 그 무언가가 무엇이냐 누군가 자세히 물어온다면 뭐라 대답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말 그대로다. 나는 이때쯤이면 그냥 무언가 되어있을 줄 알았다.


 눈을 감고 나를 그려본다. 일 년 뒤의 나를, 오 년 뒤의 나를.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경우에 따라 완성되지 않아 채워 나갈 것이 있다는 설렘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앞으로 살면서 내가 할 일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만큼은 설렘보다 불안함으로 다가온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해야지 하고 신나 하는 마음보다 사실은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세상에 내가 할 일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그런 무거운 마음.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장래희망을 적어내던 것이 생각난다. 중, 고등학교 때부터는 적어내는 장래희망이 생활기록부를 위한 스펙의 한 종류로 변질되면서 아무 기쁨이 없었지만, 초등학교 때는 달랐다. 적어내는 날의 기분에 따라 나는 어떤 날은 가수를, 또 어떤 날은 작가를, 어떤 날은 판사를 적어내기도 했었다. 적어낸 장래희망을 이루어 그 직업을 가질 멋진 내 모습을 상상하며 괜스레 혼자 뿌듯해하기도 했었다.


 장래희망이 대학교를 가기 위한 생활기록부의 일종으로 적어내는 것으로 변한 순간부터 더 이상 재미가 없었다. 내가 자라서 무엇이 될까 상상해보는 것이 더 이상 어린아이의 놀이와 같은 것이 아니게 되었다.


 어릴 때 한동안 메이플스토리라는 게임을 좋아했던 적이 있다. 내 캐릭터의 직업을 마법사로 정하고, 캐릭터가 레벨이 올라가면서 성장해서 새로운 스킬을 하나씩 배우고 더 강력한 마법사가 되는 게 어린 마음에 뿌듯하고 재밌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 메이플스토리가 우리 세대에 인기가 많았던 것은, 캐릭터가 성장해 나가며 새로운 스킬을 하나씩 배우는 그 재미에 포인트가 있는 게 아니고, 직업이 마법사와 궁수처럼 현실적이지 않은 직업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메이플스토리 캐릭터의 직업이 검사, 의사, 회사원과 같은 것이었다면 아이들이 그렇게까지 공들여서 애지중지하며 캐릭터를 키웠었을까.



 내 인생이 언제부터 이토록 재미가 없었는지 생각해봤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모든 일상에 더는 어떤 작은 두근거림도 없었고, 내일 하루가 기대되지 않았다. 사는 게 따분하고 지루하다. 어떤 날은 그냥 그만 살아도 될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죽겠다는 말이 절대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게 필요한 건 '낭만'이라는 처방을 내렸다. 낭만. 잘 사용하지 않아서 어딘지 어색하고 낯간지러운 느낌이 들기도 하는 그 단어가 고민 끝에 내가 찾은 답이다. 삶에 무엇이 결핍된 걸까 노트에 적으며 수없이 고민한 밤에 문득 그 단어가 떠올랐다. 내 삶에는 낭만이 없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시를 읽다 보면 갑자기 어느 순간 어느 구절이 마음에 파도처럼 밀려오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럼 연필로 그 구절에 밑줄을 치고 한참 쳐다보다가 시집을 덮는다. 오늘은 이 정도의 낭만이면 되었다.


 사실 낭만을 즐기는 방법을 아직 잘 모르겠다. 무언가를 즐기면서 한 적이 언젠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늘 해야 할 일들이 많았고, 그것들을 하고 싶지 않은 날들도 많았지만 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참고 꾸역꾸역 했다. 낭만도 꾸역꾸역 내 하루에 끼워 넣는 중이다. 오늘치 낭만을 내 마음대로 정해두고서, 아 낭만이네, 하고 느끼면 하루치 낭만을 다 섭취했다고 뿌듯해한다. 오랜 시간 적어온 매일 해야 할 일을 정리해서 해치우는 습관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어제치 낭만. 산책하다가 꽃을 샀다. 요즘 보기 드문 현금통에 현금을 넣고 가져가면 되는 무인 결제 방식을 사용하는 가게였다. 마침 수중에 삼천 원이 있어서 삼천 원을 통에 넣고 한 다발을 집으로 데려와 화병에 꽂았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길어지면서 친구들을 못 만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가끔씩 연락하는 카카오톡으로 추리해봤을 때 그들도 나처럼 퍽퍽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다음에 만났을 때 내가 우리 삶에 부족한 게 뭔지 드디어 알아냈다고, 낭만이었다고, 우리 인생엔 낭만이 없었다고 이야기하면 친구들은 뭐라고 할까. 어딘지 어색하고 낯간지러운 그 단어에 다들 그냥 웃어넘길까.



 아무렴 어때. 나는 매일 조금씩 할당량의 낭만을 채워가며 살 것이다. 여전히 당장 일 년 반뒤의 삶조차도 정해진 것이 없어 눈을 감으면 제대로 그려지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오늘을 꿋꿋이 살아갈 힘을 얻었다.  오늘은 그거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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