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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담 Nov 28. 2020

겨울과 연말

12월의 다이어리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단연코 겨울이다. 11월부터 아침이면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촉감이 보드라운 니트를 골라 입는 게 기분이 좋다. 집 앞 편의점에 갈 때면 얇은 반팔에 두꺼운 오리털 패딩을 대충 껴입는다. 살짝 추운 듯하면서도 패딩이 몸을 감싸줘서 바람이 들어오지 않는 그 포근함이 좋다.


 겨울이 되면 공연히 혼자 사색에 빠지게 되는 시간이 많아진다.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큰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곧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된다는 게 새삼스럽기도 하고. 올 한 해는 잘 보냈나, 새해에 다짐했던 것들은 어느 정도 이루었나, 연초에 샀던 다이어리는 꾸준히 잘 썼나 하고 돌아보기도 한다.


  어렸을 때 학교에 다녀오면 우리 집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었지만 열쇠로 문을 따서 들어오며 나는 늘 큰소리로 외쳤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하고. 우리 집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꼭 지나쳐야만 하는 작은 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 사는 술주정뱅이 아저씨를 무서워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벌벌 떨면서도, 떠는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이 더 우습게 본다는 부모님의 말에 어깨를 억지로 펴고 씩씩한 척 걸으며 집에 들어왔다. 그 집 앞을 지나는 길은 유난히도 길고 어둡게 느껴졌었다. 나는 할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 어린 나는 주먹을 쥐고 길을 지나며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각자의 삶에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더라도, 누구도 대신 겪어줄 수 없는 각자의 몫이 있는 거라고. 내가 이겨내야만 하는 두려움, 내가 극복해야만 하는 크고 작은 어려움들과 같은 것 말이다.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 타인은 없고, 타인의 삶을 평생 대신 짊어져 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는 그런 당연한 말.


 내년이면 길었던 대학생활의 마지막 해이다. 이제 내 직업은 더 이상 '학생'이 아니게 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의 한가운데에 내 던져지는 기분이다.


 '자, 이제 충분히 가르쳐주고 먹여줬지? 여기서부터는 네가 한 번 알아서 가 봐.'


 나는 할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 수없이 되뇌며 천천히 걸어보려 한다.


 여태 평범하게 사는 게 꿈이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 사는 것처럼 평범하게만 살고 싶다. 그런데 이상하게 올해는 좀 다른 생각을 했다.


 그저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 그저 그런 하루를 보내고 싶지 않다. 그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저 그런 글을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자꾸만 걱정이다. 이 글도 그저 그런 글일까 봐. 오늘 하루도 그저 그런 하루였을까봐. 내 삶이 그저 그런 방향으로 아무렇게나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봐.


 환기시키려 방 창문을 열었다. 바람이 무척 차다. 날카로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이제 진짜 겨울이야 라고 말하는 것 같다. 겨울이 좋다고 해서 이 살을 에는 듯한 찬 바람까지도 좋아한다는 말은 아니다. 바람이 쐬고 싶어서 창문을 열었다가도 5분이면 추워서 문을 얼른 닫아버린다. 방 안의 온기가, 온수매트 위의 열기가, 내게 위협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이 안전지대가 너무나도 달다.


 연말이고, 거리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진다. 정성스레 장식된 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참 예쁘다. 옛날엔 트리를 보면서 별생각 없이 따뜻하고 예쁘네 라고 마냥 생각했었다. 요즘은 그 크리스마스트리의 따뜻함을 즐기지 못할, 연말의 분위기에서 소외되었을 사람들의 잔상이 자꾸 스친다. 내가 몇 년 사이에 대단히 인성이 좋아졌거나, 마음이 따뜻해져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이것도 자연스레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밖은 무척 춥지만, 집에만 머물러있지 않으려 한다. 좋아하는 체크 목도리를 하고, 두꺼운 오리털 패딩을 입고, 발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수면양말을 신고 중무장을 한다.

 

 그래! 2021년도 어디 한 번 와봐라! 나는 이제 레벨 26이고 쪼렙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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