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이 나에게 말을 걸 때

"올리버 트위스트"

by 소단

선생님의 미움을 받는 한 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아이가 준비물을 빠뜨리고 온 날이었다. 선생님은 아이를 앞으로 불러 세운 뒤 100원짜리인지 10원짜리인지 동전을 던져주며 당장 1층 공중전화에 가서 엄마에게 전화하라고 다그쳤다. 빠뜨린 준비물을 당장 가져오게 하라고 소리쳤다.


공중전화 사용법도 잘 모르던 7살이 채 못된 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동전을 손에 꼭 쥐고 1층으로 내렸다. 자기 키보다 훌쩍 높은 공중전화에 까치발을 하고 들어서 수화기를 들고 엄마가 하던 모습을 애써 기억해 보려 했다. 구멍에 동전을 넣고 꼭꼭 누른 전화번호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엄마! 빨리빨리 그거 가져와야 해!"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안도감도 잠시 아이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서둘러 준비물을 챙겨 나서는 엄마의 소리를 뒤로 하고 전화를 끊은 아이는 준비물 없이 다시 교실로 돌아갈 용기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눈꼬리가 올라간 선생님이 매를 들고 손바닥을 내라고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렸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해진 아이는 정문을 넘어 교문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한걸음이라도 빨리 준비물을 손에 꼭 쥐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엄마가 보였고 엄마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아이는 준비물을 낚아채서 다시 교실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이제 선생님의 화난 모습 대신 인정과 혹시라도 받게 될 칭찬을 기대하며.


교실에 헐레벌떡 뛰어가 열어젖힌 교실 문 뒤에는 기대와는 너무나도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 화가 난 얼굴의 선생님의 얼굴이 울그락 부르락 했다.


"너! 누가 학교 밖에 나가라고 했어?!?"

"아니요."

"학교 밖에 나갔잖아! 거짓말할 거아?"

"아니에요 진짜..."


아이는 애써 울음을 참으며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려 애쓰며 자신을 변호해보려 했다.

혼이 나서 집 나가듯 학교를 나간 것이 아니라 엄마를 마중 나가 조금이라도 빨리 교실에 돌아오기 위해 간 것이라는 설명을 하기에는 아이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애초에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것을 받아들일 여유가 그녀에게는 없었지만 말이다.


"너 내가 교문 나가는 모습을 다 봤는데! 어디 거짓말을 하고 있어! 이리 와서 손바닥 대!!."

그제야 아이는 애초에 이 회초리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도리가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손바닥을 내밀어 올렸다.


휘익 내리치는 회초리가 아직 갓 나온 여린 잎처럼 보드라운 아이 손바닥에 닿으며 마찰음이 났다.


"찰싹"

"우아앙!!!"


참아왔던 눈물을 아이는 터트리고 말았다.


회초리만큼은 피하고 싶어 애를 썼던 자신의 온갖 노력에 대한 서러움이었는지

선생님의 지시사항을 모두 이행했는데 돌아온 회초리에 대한 억울함이었는지

아까 얼굴도 보지 못하고 간 엄마가 보고 싶었던 건지

아이에 대한 미움을 담아낸 회초리에 담긴 선생님의 감정이 손바닥에 파고들어서인지

아이는 알 수 없었다.


남편의 초등학교 1학년 때 이야기이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불쑥 나온 몇 마디 안 되는 남편의 지난날의 추억 이야기에 내가 눈물이 왈칵 나는 것은 내 아이가 그 나이와 같았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아이가 느꼈던 그날의 감정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아파했다.




올리버 트위스트는 앞서 언급한 남편의 어린 시절의 사건과는 비교도 안 되는 학대를 겪었다. 그것이 학대라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고아원에서 '사람' 보다는 '노동 인력'으로 그 아이는 존재했다. 그나마 시체를 닦는 일이 그 아이가 사람대접을 받으며 일하던 터전이었다.


시간이 흘러 상황은 더 좋아지지 않았다. 자신을 낳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모욕하는 말에 견디다 못해 동기와 주먹다짐을 하고 뛰쳐나온 고아원 밖의 세상은 더욱 잔혹했다.


아이는 결국 도둑의 소굴로 들어가게 되며 억울한 누명을 쓰고 경찰에 잡히게 된다. 하지만 그의 맑은 눈을 알아보았던 한 신사의 도움으로 그 구렁텅이를 벗어날 뻔 하지만 또다시 음모에 휩싸여 그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 이후 또 선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올리버는 최종적으로 구제가 되지만 그 모든 과정을 읽는 독자는 특히 나와 같은 아이를 두고 있는 독자들은 이야기를 읽는 내내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 여린 귀로 아이가 받아내야 했던 온갖 모욕적인 말들, 어떤 방패도 허락되지 않은 그 아이가 헐벗은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나날들. 정작 아이는 자신 앞에 닥친 상황을 해결하는데 급급해 살아가지만 그 고통을 오롯이 느껴야 하는 건 그 아이가 어떤 대접을 받고 자라야만 했는지를 아는 독자의 몫인지도 모르겠다.


한 끼의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일해야 했던 올리버가 "Please, sir, I want some more"이라고 감독관에게 정중하게 요청을 하는 것은 단순한 음식의 요청이 아닌 인간으로서 아이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기본 권리와 존엄을 말한다.


실제로 찰스 디킨스가 쓴 이 소설의 배경이 된 19세기 영국 산업 혁명 시기에 빈곤층 아이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빈곤은 그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아이들은 형벌과 같은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그러한 와중에도 올리버는 그러한 악으로 둘러싸여 있는 환경에서 타락하지 않고 선한 본성을 지켜낸다.

인간으로서 지켜져야 할 기본적인 권리도 존엄도 받지 못했던 그 아이가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열악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려는 모습은 마음 깊은 울림을 준다.


남편과 올리버처럼 우리 모두 어린 시절이 있다. 그 시절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곱씹으면 마치 오래 책장 위에 두었던 고전처럼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하다.


남편이 이유 모를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바른 행실로 결국 선생님의 태도를 변화시켰듯,

올리버의 선함이 결국 세상의 부조리를 이겨냈듯,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반짝이는 눈빛을 가졌던 강인한 어린아이가 존재한다.


가진것도, 누군가의 보호도 없이 홀로 세상의 부조리 앞에 서 있었던 올리버처럼, 까치발을 들고 울먹이며 공중전화를 걸어보던 아이처럼,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순수함과 선함을 지켜냈던 아이가 있다.


살아가며 예상치 못한 바람이 불어올 때,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흔들려 마음이 어지럽혀질때면

내 안의 깊은 곳의 그 아이를 찾아봐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어두운 곳에서 더 또렷하게 빛나는 그 아이는 부서지지 않았다.



keyword
이전 02화'노인과 바다'가 안긴 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