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에서 7일 동안 화 안 내고 친절하게 살아보기’라는 개그우먼 강유미 씨의 콘텐츠를 보았다.
친절하게 말하고 행동하기로 결심한 사람이 일주일 동안 어떤 일을 겪게 되고, 결국 흑화 하는 과정을 현실감 있게? 묘사했다.
웃음을 주기 위해 과장하기도 했지만, 그 안에 던져지는 메시지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불만 사항을 접수하기 위해서는 전투태세를 갖추어야 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불량품 하나 환불받으러 가는 것도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고,
말투와 표정, 태도까지도 어딘가 비장해져야 했다.
부드럽게 말하면 가볍게 여겨질 것 같았고, 양보하면 만만하게 보일 것 같았다.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약해 보이지 않아야만 상대가 진지하게 들어줄 것 같다는 전제가 있었다.
나 역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이었기에 그 구조를 잘 알고 있다.
불만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인상을 쓰고 강하게 자신의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친절과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건 예민함이 아니라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강하게 말해야 권리가 생기고, 단호해야 보호받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날을 세우게 된다.
처음에 캐나다에 왔을 때 가장 놀란 것 중 하나가 불만 사항을 이야기하는 태도가 다른 것이었다.
한국에서 취했던 그런 전투태세는 상황을 더 불편하게 만들 뿐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여기서는 문제가 생기면 설명하면 된다.
환불을 요청하면 규정을 확인하고 처리된다.
안 되면, 그냥 안 되는 것이다.
억울함을 과장할 필요도, 감정을 내비칠 이유도 없다.
이곳에서 공격적인 태도는 힘이 아니라 위험 신호다.
차분함이 신뢰가 되고, 정중함이 곧 권리가 된다.
강함이 아니라 침착함이 나를 보호한다.
캐나다에서 불만 사항을 말하게 되는 흔한 경우 중 한 가지는 '기다림'이다.
직원들이 일하기 편리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 이곳은,
고객들의 기다림 허용치에 대한 기준이 한국과는 전혀 다르다.
익히 알려진 캐나다의 느린 의료 시스템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나는 6개월을 기다려 MRI를 찍으러 갔고, 예약 시간에 맞춰 도착했지만 병원에서 한 시간 반을 더 기다려야 했다.(생명이 위급한 정도로 위중한 환자는 바로 검사를 받는다.)
마음을 잘 다스리겠노라는 반복된 다짐에도 엉덩이가 자꾸 들썩거린다.
별로 환자도 없는 것 같은 진료실을 자꾸 들여다보고 싶다.
나를 두고 까먹은 건 아닌지, 커피 한잔하러 나간 건지 의심된다.
마침내 나를 부른 간호사에게 나는 불만을 표하는 대신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그리고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굳어있던 표정도 풀리며 오늘 환자가 많다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친구야, 싸우지 말자.”
말이 느린 최강록 셰프가 한 말이다.
조용한 그가 힘주어 말한 그 문장이 멈추어 생각하게 한다.
조금 느려도, 조금 덜 효율적이어도, 조금 화가 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느리고 서툰 듯한 그의 말은 약하지 않았다.
인생을 통해 던지는 그의 메시지들이 프로그램보다 더욱 화제가 되고 있는 듯하다.
복잡해 보이는 상황에서 답은
어쩌면,
아니 언제나,
간단하고 명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