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단 Mar 21. 2024

사랑받은 남자와 결핍있는 여자의 다른 육아법

내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 것의 시작은 같은 아이의 행동에서 나오는 나와 남편의 다른 반응 때문이었다.

아이가 울거나 보채거나 할 때 나는 화가 나서 화를 삭혀야 했는데 남편은 아무런 타격이 없다.

그냥 아이를 묵묵히 안아주거나 달래주는 것이다.


아이를 예뻐하는 모습도 달랐다. 아기에게 시종일관 예쁘다고 사랑스럽다고 하는모습이 처음에는 어색하고 적응이 되지 않았다. 물론 나 역시 나의 아이가 사랑스럽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표현할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나와 남편의 상반된 태도는 나 스스로 점점 죄책감이 들게 했다. 남편이 나에게 결코 뭐라고 한 것이 아니지만 나는 '나는 왜 이럴까'라는 것에 대한 답을 찾아야만 했다.


나와는 달리 남편은 어린 시절의 많은 부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놀라웠던 말은 어릴 때 엄마가 자신을 혼내고 훈육을 할 때에도 자신에 대한 엄마의 사랑을 1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님은 지금도 우리 아들과 폰으로 30분은 족히 재미있게 놀아주신다. (캐나다와 한국에 있기 때문에) 어머님은 온갖 집에 인형들을 가져와 작은 폰 화면 앞에서 인형극을 해주시는가하면, 율동으로 손주 앞에서 노래와 춤을 추기를 마다하지 않으신다. 피아노와 바이올린도 가져와 연주를 해주신다.


한국에 갔을 때도 나는 아이를 놀이터에 데리고 가면 그네를 잠깐 밀어주거나 안전한지 따라다니며 확인할 뿐인데, 어머님은 잠시도 쉬지 않고 놀이 기구 사이를 왔다갔다 하시며 아들을 깔깔 웃게 만드셨다.


손주한테도 그렇게 해주시는데 그 젊은 시절 남편에게 어떻게 해주셨을지가 눈에 선했다.


남편이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산수 과목이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놀러온 고모가 약간의 핀잔을 주며 아직 이것도 못하냐고 했다. 속상해진 남편을 알게 되신 어머님이 남편에게 별거 아니라고 무한 애정을 보여주시면서 옆에서 앉아 하나 하나 함께 문제를 풀었더니 문제가 너무 잘 풀렸다고 했다. 남편은 지금까지도 수학을 좋아한다. (아이와 엄마의 애착 관계는 학업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실제 예이다)


이렇게 아이를 키우는데 가장 근본은 사랑과 소통, 공감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시며 그렇게 정석으로 자란 사람이 나의 남편이다. 아버지와 소통은 많이 없었지만 어머님의 이런 사랑을 받고 자란 남편은 감정 기복이 별로 없으며 나의 감정을 항상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내 편이다. 


내가 자가면역 질환을 가지게 되면서 나는 내 기준의'아내'라는 역할을 거의 포기했어야 했다. 모든 몸에 통증이 돌아다니고, 컵 하나도 손에 못들고, 혼자 옷도 못 입던 시절 나는 나 자신에 대한 무력감과 좌절감으로 매일 아침 눈을 뜨지 않았으면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내가 생각하는 '아내'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고 내가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남편이 하는 행동이 이상하다. 나를 계속해서 사랑해주고, 나를 돌보아주고 격려해준다. 그냥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 한다.


나는 이 사람을 통해 알게 되었다. '조건 없이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그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존재하는구나.. 라는 것을.. 


나는 남편의 돌봄과 사랑으로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나도 내 아이에게 그런 사랑을 주어서 남편과 같은 사람으로 잘 키우고 싶었다. 육아와 관련된 책을 읽고 자료들을 찾아보고 노트에 적어가며 나를 바꿔나가려는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만 하였다. 


아직도 나는 그 과정 속에 있으며, 항상 나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내 마음 속 깊은 불안감들이 나를 잡고 흔들며 더 잘할 수 있지 않냐고 재촉할 때 남편과 이야기하면 항상 내가 너무 잘하고 있다고 한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라고 말해준다.


모르겠다. 내가 과연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웠을지.. 물론 지금은 매체들에서 아이 교육방법을 접할수도 있고 나 역시 자아와 부딪히면서 그런 점들을 찾아 보며 노력했겠지만, 누군가 내 옆에서 아이 마음을 헤아리는 표본을 보여주는 것과는 달랐을 것이다. 참 감사한 일이다.


어제 한국에 친정 엄마와 통화를 하는데, 목욕탕에서 나보다도 젊은 엄마가 아이를 잠시도 가만 두지 않고 윽박 지르는 모습을 보셨다고 한다. 아이가 하려는 모든 행동들을 제재하며 자신이 원하는데로 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큰 소리를 내는 것을 보셨다고 한다. 사람들 앞에서도 그러는데 집에서는 아이를 어떻게 대할까.. 전화기 너머로도 생생하게 연상되는 장면에 그 아이를 가서 안아주고 싶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 장면이 생생하게 연상되는 것은 나 역시 어릴 때 주변에서 흔히 보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잘 없다) 그 아이는 자신의 의견을 내보이거나 말할 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엄마는 아이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겠지만 아이는 엄마의 그러한 태도에서 결코 사랑을 느낄 수 없다. 엄마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고 자란 아이가 평생동안 어떤 싸움을 해야하는지는 내가 겪어보아서 잘 알고있다.


나도 알고 있다. 화를 내고 윽박지르는 그 엄마도 누군가의 딸이고, 그녀 역시 그렇게 양육하는 방법밖에 알지 못할지도 모른다.(부끄럽지만 나 역시 아이를 그렇게 대하던 시절이 있었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녀 역시 가여운 어린 시절의 아픔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아이는 자라서 엄마가 되었다. 성인으로서 부모는 책임이 있다.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지선택 할 수 있다.  지금은 핸드폰만 열어보면, 관심만 있다면, 아이를 어떻게 정서적으로 안정을 주면서 키울 수 있는지가 너무 잘 나와있다. 나 자신의 어린 시절이 아이에게 영향을 주고 지금의 나의 삶에 영향을 준다면 의학적인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다. 


결핍이 있는 엄마도 내 아이를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선택할 수 있다. 내가 해 보았기에 확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나와같은 경우 좋은 남편의 지원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가능하다는 것을 남편을 키워내신 어머님의 경우가 말해준다. (아버님은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고 집에 늦게 들어오셨다) 어떤 결핍의 상황에서도 엄마는 선택 할 수 있다. 


모든 아이들이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서 따뜻한 가정을 이루고, 또 그 가정이 모여서 따뜻하고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게 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그 시작은 아이에게 보이는 엄마의 미소와 아이를 대하는 친절한 말 한마디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이뿐 아니라 나를 위한 시작이기도 하다.  


결코 한번에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손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실패해도 다시 반성하고 도전하고, 노력하는 데에는 분명 다른 결과가 있을 것이다.


여러 걸음 나아가려는 부담감은 잠시 접어두고 오늘 하루 한걸음만 나아가보자. 


이전 05화 나에게 상처 준 사람 마주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