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도 정리가 필요하다
모든 감정에 대해 어떻게 다 정의하고 이유를 찾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집안 정리를 완벽하게 할 수 없더라도 정리정돈을 하고 살아가지 않는가. 그것이 삶에 얼마나 큰 기여를 하고 생활에 활력과 변화를 주는지는 해 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우리의 감정도 완벽하게 정리할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의 정리와 정돈이 필요하다.
현재의 나의 감정들을 정의하고 정리하려면 대개는 과거의 나의 감정과 마주해야 한다. 그것은 나의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 형제관계, 교우 관계에서 있었던 어려움이나 결핍과 종종 연관이 있다.
나는 어릴 때 엄마와 행복하게 놀았던 기억이 잘 없다. 남편이 종종 어린시절에 엄마와의 추억을 이야기 할 때 나도 뭐라도 생각해내서 말하고 싶은데 도저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그렇다고 엄마가 자녀들을 잘 돌보지 않은 것이 아니다. 맞벌이한다고 그 누구보다 성실히 일 하시고 가족들에게 희생을 하면서 최선을 다하셨다.
다만, 감정적인 소통이 없었던 것이다. 엄마가 바쁜 직장 생활, 생계를 위한 생활을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엄마 역시 감정적인 필요가 채워지지 않은 여유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었기도 하다.
나는 그래서 그런지 커가면서 문제가 생기면 곧잘 혼자 고민하고 해결하는 습관이 들었다. 혹은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읽으면 위로를 받고 해결책을 찾았다. 그런 나를 보며 엄마는 '너는 왜 엄마한테 의논을 안하고 혼자 다 해결하려고 하니' 라며 서운하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직장 생활을 하고 돈을 모아 중국으로, 호주로, 캐나다로 틈만 나면 집을 떠나 살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어 나간다는 표면적인 이유 뒤에는 집에서 떠나 살고 싶은 마음이 컷다.
나는 이렇게 어릴 때 감정의 소통을 부모와 잘 경험하지 못한 채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는 당연한 것이기도 했지만) 자라게 되었고 꽤나 독립적으로 생활했다고 생각하며 결혼을 해서도 외국에 살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결혼을 하고 난 뒤, 아이를 낳고 난 뒤에 나타났다. 전문가들이 말하길 잠자고 있던 무의식이 아이를 키우게 되면 다시 깨어난다고 한다.
그리고 감정 소통에 대해 단념했던 엄마에게 이유도 없이 자꾸 전화를 하게 되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라도 하며 뭔가 나의 감정을 받아주고 알아주기를 더 바라게 된다.
허구의 독립이라고 하던가. 어릴적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 겉으로는 어른스럽고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애착 대상에게 계속 의존적인 욕구를 보이는 현상이라는데, 나 역시 아이를 가지고 난 후 그런 양상이 나타났던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 정상적이지 않게 솟구쳐 오르는 화에 대해 감정 정리가 필요했는데 그 어지러운 감정의 깊숙한 서랍 속에는 엄마의 사랑에 대한 결핍이 있었다.
하루는 이런 감정들을 정리를 해서(공부도 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나의 이 우울감과 불안감과 화에 대한 원인이 어린 시절의 결핍에서 온 것이 크다는 결론에 대해 이야기 했다.
엄마는 미안하다고,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다고 하셨다.
나도 알고 있었다.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다는 것을.. 그리고 엄마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엄마의 부모님의 그 위의 세대까지 생각하며 엄마를 이해해 보려고 수많은 노력도 해보았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다 알고 있었다. 우리한테 말은 안했지만 엄마의 미안한 마음도 알고 있었다. 매일 차려주는 아침밥이 엄마의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에게 그 말을 들으니, 나는 마음 한켠에 빈 방이 생긴 기분이었다.
어린 시절 한 켠에서 울고 있던 아이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사르르 사라져 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문제가 한번에 해결되었다고는 말 할 수 없다. 그 아이는 아직도 종종 빈 방에 찾아오곤 한다.
하지만 나는 어느정도의 감정을 정리 하였고, 이제는 과거의 상처받았던 '나'의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나를 이해하고 다독여주고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
과거의 '나'를 마주하고 품어 주는 것은 감정을 정리 정돈 하는데 꼭 필요한 과정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