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족구왕

족구는 남자의 자존심, 족구에 도전하다!

by 소똥구리

나이 마흔넷, 아직도 족구에 콤플렉스가 있다면 이상하지 않을까? 중학생 때부터 안경을 썼다. 운동신경도 무딘데 안경까지 쓰니 공놀이를 즐기지 못했고, 한다 해도 헤딩은 절대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족구의 나라다. 대학에서 엠티를 가면 족구를 하였고 군대에서는 물론이고 직장에서도 족구를 하였다. 족구는 남자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내 발과 마음은 자유분방하게 따로 놀았다. 잘하지 못하니 족구를 하면 긴장되고 위축되었다. 그렇게 족구는 평생을 따라다닌 콤플렉스였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청주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회사는 봄가을 어김없이 체육대회를 열었고 역시나 족구를 하였다. 젊고 건강한 나는 선수로 뛰어야 했다. 그때, 변신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으니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기 딱 좋은 기회였다. 변화의 첫 번째 과제는 ‘족구’였다. 족구 앞에서 작아지는 내 모습도 싫었고 내심 연습하면 잘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제대로 연습을 안 해서 그렇지 내가 못할 게 뭐 있나” 싶기도 하였다. 평소 연습 한 번 안 하다가 잊을만하면 시합을 하니 어찌 잘할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기숙사 룸메이트인 남진 씨는 진실되고 순수한 친구였다. 족구에 대한 나의 고민을 얘기하자 선뜻 “그거 쉬워요. 조금만 연습하면 돼요. 나랑 연습합시다.” 하였다. 퇴근 후 축구공을 들고 기숙사 앞에 있는 봉명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나갔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나와 족구를 이어주지 않았다. 연습 단 삼 분 만에 남진 씨가 ‘억’하고 쓰러졌다. 처음엔 장난치는 줄 알았으나 상황이 심각했다. 주저앉은 남진 씨를 병원으로 옮겼는데 정강이뼈 두 군데가 골절되어 있었다. 남진 씨는 2주 넘게 입원을 했고 그렇게 족구는 내게서 멀어졌다.


십오 년이 지난 오늘 다시 족구 연습을 하고 있다. 한 달 후에 과대항 족구시합을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누가 족구를 시키지는 않지만 콤플렉스는 극복하고 싶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코치도 찾았다. 영모형은 군산에 있는 유일한 동문이면서 족구클럽 선수이기도 하다.


영모형과 헤딩 연습을 하였다. 헤딩은 가장 기본이지만 제일 어려운 기술이기도 하다. 얼굴로 공이 날아오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낀다. 이를 극복해야 족구를 즐길 수 있다. 영모형이 공을 던져 주면 이마로 받았다. 몇 번 해보니 느낌을 알겠다. 안경을 쓰고 있어도 정확히 이마에 맞추니 문제가 없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사십 대 아저씨가 공놀이하는 모습을 누가 보면 웃긴다 싶겠지만 나름 진지하였다.


한 달 후 족구시합이 열렸다. 결과는? 음... 예선탈락이었다. 변명이지만 첫 경기에서 너무 강팀을 만났다. 결과적으로 첫 상대가 최종 우승을 했으니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브라질을 만난 셈이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족구를 즐길 수 있었다. 족구가 고역이 아니라 즐거운 놀이가 되었다. 날아오는 공을 이마로 받아 튕겨내는 순간, 나를 얽매고 있던 족쇄 하나를 풀어 던지는 느낌이었다.(15.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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