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산 도라지

[양촌일기] 역경은 지나고 보면 선물

by 소똥구리

가을 어느 토요일 오후, 달님이와 아파트 단지에 있는 작은 놀이터에 갔다. 바로 옆에 큰 윗말공원 놀이터가 있어 와서 노는 아이들이 적은 작은 놀이터이다. 그러다 보니 놀이터 마당은 잡초들 세상이다. 민들레도 있고 클로버도 있다.

달님이 노는 모습 지켜보다가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아 본다. 이렇게 풀이 자라고 오는 아이들이 없으면 놀이터가 없어지지 않을까 괜한 걱정도 든다. 모래밭이라 풀은 뿌리까지 쑥쑥 잘도 뽑힌다.


오전에는 달님이와 남양주 부모님 농원에 다녀왔다. 딸은 밭 입구 소나무에서 할아버지가 매어주신 그네를 탔고 나는 도라지를 몇 뿌리 캤다. 도라지를 캐기 위해서는 특수한 농기구가 필요하다. 쇠로 된 무겁고 커다란 삼지창 모양인데 땅에 깊게 박고 흙을 제낄 때 쓴다. 이 삼지창을 연둣빛 도라지 한 뼘쯤 되는 곳에 꽂고는 체중을 실어 끝까지 박아 넣은 후 뒤로 제껴야 도라지가 흙과 함께 캐지는 것이다.

우리밭 도라지는 온전한 모양으로 뿌리 끝까지 제대로 캐지는 경우가 없다. 시장에서 파는 도라지 마냥 길쭉하게 쭉 뻗은 것이 아니고 마치 산삼처럼 이리저리 꼬여 있고 뿌리는 끊겨 있다.


아버지 말씀이 시장에 파는 도라지는 밭에 모래흙을 덮고 그 위에 심는다고 한다. 그러면 도라지는 막히는 곳이 없으니 곧게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그런 밭에서는 캐는 것도 마찬가지로 쉽다. 모래흙이니 그냥 잡아 뽑아도 될 정도이다.

모래밭에 심은 도라지를 위해서는 농사꾼이 물도 주고 비료도 뿌리고 농약도 쳐서 잡초를 제거해 주어야 한다. 옆에서 사람이 돌봐주고 키워 주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밭 도라지는 야생초처럼 스스로 물기를 찾고 양분을 찾아 뿌리를 이리저리 내뻗는다. 뿌리끝 성장점 앞에 돌맹이가 있으면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 나아간다. 멈춤도 없고 정해진 방향도 없다. 하지만 계속 나아간다. 마치 물처럼 막히면 돌아가고 깊은 곳을 만나면 채우고 나아간다.


모래밭 도라지처럼 깨끗하고 정돈된 환경을 부러워했다. 스스로 뿌리내리고 혼자서 수분과 양분을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되는 마트용 도라지가 되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씨앗은 산속 깊은 곳 여러 작물을 심고 농약을 삼가는 농원에 뿌려졌다. 그리고 이제는 어지간한 가뭄이나 비바람에 끄떡없는 47년생 자연산 도라지가 되었다.


모래밭에서 자란 뿌리는 쑥쑥 잘 뽑힌다. 억센 땅에서 자란 뿌리는 끊길지언정 잘 뽑히지 않는다. 고난 속에서 깊게 뿌리내린 것이다. 우리밭 도라지는 인기가 높다. 야생 도라지처럼 거칠지만 아름다운 자연에서 온 힘을 다해 뻗은 뿌리이기 때문이다. 역경은 지나고 보면 선물이다.(18.10.11, 2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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