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 수녀님

누나의 맑고도 고운 모습이 그립다

by 소똥구리

지난주 합덕에 다녀왔다. 고즈넉한 합덕 성당, 사방으로 탁 트인 가을 들판, 주황빛 석양도 아름다웠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별이었다. 가로등을 두지 않아 유난히 깜깜한 밤하늘에는 고요하게 빛나는 별이 있었다.


군대 가기 전의 나는 꿈도 실력도 없는 별 볼 일 없는 미숙한 청춘이었다. 군 복무를 위한 휴학은 무력하고 나태했던 시절과 결별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 다짐의 하나로 성당에 나갔고 레지오에도 가입했다.


그 모임에서 스텔라 누나를 만났다. 스텔라 누나를 비롯해 단원들은 너무나 착하고 심성이 고운 사람들이었다. 수요일마다 이문동 성당의 작은 방에 모여 소박한 꽃다발을 성모상 앞에 바치고 묵주 기도를 드렸다. 긴 기도와 묵상 끝에 단원들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의 기도는 신앙에 대한 절실함이 아니라 내 삶에 대한 이기심이었다. 반년쯤 지나 나는 복학을 했고 스텔라 누나는 수도회에 입회하였다고 편지를 보내셨다.


이십 년 뒤 군산에서 일하게 되었다. 대학 졸업, 취업, 결혼, 박사학위, 시간강사 등 편치 않은 굴곡 끝에 우연찮게 공무원이 되어 군산에 발령을 받은 것이다. 안정된 직장과 지방 도시의 한가함으로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스텔라 누나가 생각났다.


누나가 보내 준 이십 년 전 편지를 찾아보았다. 색이 바랜 편지 봉투에는 손글씨로 수녀님이 입회한 수도회 이름이 쓰여 있었다. 아직 그곳에 계실까? 조마조마하며 전화를 걸었다. “띠리링, 띠리링”, 전화를 받은 수녀님은 스텔라 수녀님이 기도 중이셔서 메모를 남겨 두겠다 하였다. 다행히 오후 5시쯤 수녀님이 전화를 주셨고 게다가 수녀님은 가까운 전주에 계셨다.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 반가운 얼굴을 보았다. 수녀님은 이십 년 전 모습 그대로셨다. 눈빛은 부드러웠고 얼굴에서는 빛이 나는 듯했다.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도하며 살아온 얼굴이다. 수녀님은 변함없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었고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싶어 사회복지를 공부하고 계셨다. 수녀님은 나의 결혼을 축하해 주셨고 나의 아이들을 축복해 주셨다. 그렇게 몇 번의 만남 후 수녀님은 장애인을 돌보는 소임을 맡아 광주로 떠나셨다.


국정감사 준비를 마치고 퇴근하니 새벽 한 시가 넘었다. 겨우 세수를 하고 거울에 비친 얼굴을 들여다본다. 늙고 지친 얼굴이다. 화장품이 나빠서 이런 얼굴은 아닐 것이다. 수녀님은 하느님을 섬기는 삶을 택하셨고 나는 나만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화장기 없는 누나의 맑고도 고운 모습이 그립다.(17.2.6, 2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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