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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똥구리 Feb 18. 2024

금산원정대(후)

삼장 발을 엮는 것은 여자아이들의 몫이었다. 볕 좋은 마당에 모여 짚을 한 움큼씩 연속해서 묶어주면 삼장 발이 만들어진다. 아이들이 발을 엮으면 엄마는 기다란 대나무로 길이를 재서 값을 쳐줬다. 라면땅 하나가 귀하던 시골에서 아이들이 용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삼장 발 엮기는 잔치 같은 놀이이기도 하였다. 온 동네 여자애들이 우리 집 마당에 모여 발을 엮고 한쪽에서는 고무줄놀이를 하였다. 아버지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인삼을 재배하면서 생긴 풍경이었다.     

  

세상에 그냥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아버지도 어느 날 갑자기 인삼을 심어볼까 한 것은 아니다. 아버지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혼자서 아들을 키웠다. 할머니는 여장부였고 아들 위하는 마음은 지극정성이었다. 아랫집 붕길이 엄마는 할머니를 “아들 위해서라면 호랑이 눈썹도 뽑아올 분”이라고 할 정도였다. 

  

할머니는 시골에서 농사만 짓지 않고 서울 평화시장에서 옷을 떼다가 대둔산 산골 마을에 팔았다. 옷값으로 주로 고사리를 받아 다시 서울에 내다 팔았다. 아버지는 그때 할머니를 따라 대둔산 골짜기 골짜기를 다닌 것이다. 그때 금산에도 갔었고 금산에서 인삼을 보고 인삼의 가치를 깨달은 것이다. 아버지와 인삼 사이에는 할머니-대둔산-고사리-금산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었던 것이다.      

  

금산시장 구경을 마치고 대둔산으로 향했다. 옥계동 계곡을 따라 당마루를 지나 싸리재에 닿았다. 아버지와 할머니는 보따리를 이고 지고 이 고개를 걸어 넘었다. 그때는 골짜기마다 마을도 많고 사람도 많고 아이들도 많았다. 지금은 마을도 사람도 아이들도 없다. 골짜기는 적막할 뿐이다. 대둔산 골짜기와 산등성이를 더듬는 아버지 눈길이 추억에 촉촉이 젖는다.

  

할머니가 보따리를 이고 다니던 이 길에 이제는 할머니가 없다. 아버지는 할머니와 걸었던 그 길을 끝까지 가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길은 끝나고 없었다. 아버지는 계속해서 산을 넘어가보자고 고집을 부렸고 우리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갔다.

  

점점 가팔라지는 비탈진 산길 끝에 벌목꾼과 작업 트럭이 세워져 있었다. 벌목꾼들은 차로는 넘을 수 없다고 내려가라 하였다. 아쉬워하는 아버지에게 다음에는 사륜구동 지프를 타고 산을 넘어 보자고 위로하고 대둔산에서 멀어졌다. 금산원정대의 탐험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자 아버지는 내곡리 밭 한쪽에 작은 인삼밭을 만든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싹이 돋기 시작했다. 다섯 개의 푸른 잎! 모든 잎이 신비롭고 싱그럽다. 연한 초록빛에서 생생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가을이면 추억처럼 빨간 인삼 씨앗이 맺힐 것이다. (19.2.13, 24.2.18) 


ⓒphotograph by soddongguri('2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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