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하고 당당한"
고양 지청에 K과장이 있었다. 소아마비로 목발을 짚고 다녔지만 업무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 어울려 가끔 술도 한잔 나누며 지냈다.
술에 얼큰하게 취한 어느 날 그가 어머니 얘기를 꺼냈다. 언제가 어머니가 새끼발가락을 다쳤단다. 한동안 새끼발가락에 보호대를 붙이고 지내야 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탁자에 다친 새끼발가락을 또 부딪혔다. 성한 발끝도 부딪히면 얼마나 아픈가.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찡하지 않던가. 얼마나 아팠는지 어머니도 눈물을 흘렸다. 한참을 운 어머니는 K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난 이 발가락 하나 다쳐도 이렇게 불편한데, 넌 평생 두 다리가 불편해 얼마나 힘들었니..”
어머니가 아팠던 곳은 발가락이 아니었다.
몸과 마음에 장애가 있는 경우 가장 힘든 것은 본인일 것이다. 하지만 평생 그 모습을 지켜봐야 하고 또한 언젠가는 자식 혼자 남겨두고 가야 하는 부모의 마음은 더욱 심란하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그것이다. 돌봐줄 이 없는 이 험한 세상에 아이 홀로 남겨두고 떠나야 함은 이 세상 어떤 미련보다 크고 아프다.
호주에 살고 있는 스물한 살의 에마는 네 가지의 장애가 있다. 다운증후군, 자폐증, 청력손실 그리고 구개열까지. 다른 부모와 마찬가지로 에마의 어머니도 에마의 삶을 걱정했다. 특히 자기들이 죽고 난 후 에마가 어떻게 살아갈지가 더 걱정이었다.
에마는 글조차 읽지 못한다. 어머니는 에마의 그런 단점에서 가능성을 찾아냈다. 어머니는 여러 기관에 편지를 보내 에마를 ‘비밀문서 파기자’로 채용해 줄 것을 제안했다. 에마는 글을 모르니 비밀이 샐 염려가 없다고 설득하였다. 언뜻 황당한 이 제안에 몇몇 회사에서 호응해 주었다.
그 회사들이 그저 보안 때문에 그 제안을 수용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읽고 화답하여 기꺼이 계약을 맺었을 것이다. 그 회사들의 마음 또한 너무나 고맙고 아름답다.
에마의 어머니는 참으로 당당하고 긍정적인 분이다. 글조차 읽지 못하는 딸을 그저 무능력하게 보지 않고, 그런 약점을 강점으로 바꿔줄 생각을 하였으니 말이다.
요즘 우리나라 부모들이 교육, 대입, 취업, 결혼까지 신경 쓰느라 고난의 삶을 살고 있다고 자조하지만 그것은 살아서의 걱정이고 근심이다.
죽음은 모든 것과의 이별이다. 죽음에 임해서도 놓지 못하는 것이 자식에 대한 걱정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을 그저 걱정으로 끝내지 않은 애마 어머니의 지혜와 용기가 놀랍고 감사하다. (15.10.28, 2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