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창밖으로 풍경이 빠르게 흘러간다.
그저 흘러갈 뿐 유심히 살펴보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기차를 타면 창 밖 모든 풍경이 신기하였다.
철로 밖 풍경은 보고 또 봐도 지루하지 않았다.
잠만 자는 어른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은 내가 그러하다.
내 시선은 창밖 세상은 버려둔 채 작은 지면에 머물러 있다.
KTX가 너무 빨리 달린다.
철마다 새롭고 아름다운 풍경이 철로변에 펼쳐지지만
바라볼 여유 없이 빠르게만 달려간다.
역방향 좌석에라도 앉게 되면 창밖 세상은 거꾸로 멀어진다.
어지럽다.
겨울 어느 금요일 저녁, 서쪽 창가에 앉아 서울역으로 가고 있었다.
문득 시선이 끌려 창밖을 보니 물 대어 놓은 논이 거울처럼 매끈하다.
반듯하게 네모 난 논두렁이 꼭 바닷물 받아 놓은 옥구 염전 같다.
하늘 끝 붉은 노을이 아름답다.
무논에 비친 노을빛은 더욱 곱고 뭉클하다.
책에서 눈을 떼고 창밖을 바라보지만
곧 열차는 터널 안 어둠 속으로 내달린다.
(17.1.10; 24.11.5)
사진_노을ⓒsoddongguri(24.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