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촌일기] 사람이 떠난 자리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고,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느긋이 내곡리 밭으로 향했다.
밭으로 가는 길, 가을 하늘이 눈부시게 청량하다. 외곽고속도로 통일로 IC 근처 산모퉁이를 돌아서니 탄성이 터진다. 깨끗하게 쭉 뻗은 고속도로 너머로 북한산 백운대의 모습이 절경이다. 기차를 타고 한참을 가고도 두어 시간 산행을 해야만 볼 수 있을 절경이 그저 운전석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오늘처럼 맑은 날은 더욱 아름답고 선명하다.
송추, 의정부를 지나 별내 IC로 나와 내곡리 밭으로 올라가는 길은 소박하다. 아스팔트 대신 낙엽으로 뒤덮인 길은 포근해 보인다. 경쟁하며 자라 키가 큰 참나무, 느티나무, 떡갈나무, 소나무들이 이파리마다 서로 다른 다른 고유의 색을 뽐내고 있다. 저마다 다르지만 그 어울림에 눈이 편안하고 즐겁다. 차에서 내려 걷고 싶은 길이다.
인사하듯 비스듬 서 있는 낙락장송 아래 밭은 가을에 폭 쌓여 있다. 사방이 숲으로 둘러있고 오직 하늘만이 열려 있다. 햇빛을 받는 북쪽과 동쪽 숲이 유난하다. 노랗고 빨갛지만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바람이 분다.
우수수 샤라락 우수수 샤라락.
비 오는 소리가 들린다. 낙엽이 비처럼 쏟아진다. “와” 자연스레 경탄이 터진다. “좋~다” 아버지의 추임이 뒤따른다. 오늘이 절정일 듯하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에 홀로 보기 아깝다고 생각한다.
맥문동 싹이 오른 곳과 둘레길의 억센 풀들을 정리해 본다. 소용없는 일이다. 거친 풀들을 이겨낼 수가 없다. 겨울 지나고 봄이 되어 자연히 녹을 것이다. 기다려야지 지금 억지로 정리할 수는 없는 일이다.
숲 속 해는 짧다. 금세 그림자가 길어진다. 멧돼지 흙 목욕하듯 아버지는 흙속에서 둥글레를 캐고 어머니는 맑은 물에 둥글레를 씻어 갈대발 위에 널고 있다. 큰누나와 달님이는 산보 삼아 걸어서 가을길을 내려간다. 나는 조금 기다려 부모님을 차에 태우고 내려갈 것이다.
늙은 소나무 그늘 아래 앉아 부모님 모습을 지켜본다. 두 분은 큰소리로 서로를 타박하지만 소란스럽지 않다. 두 사람이 떠난 공간은 좀 전과 다르게 고요하다. 신기하게도 불과 몇 분 전과 다른 공기로 채워졌다. 그 고요의 막을 깨고 새들이 날아든다. 대부분 옅은 갈색이었지만 한 마리는 파란 무늬다.
새들은 낮고 가까이 난다. 나를 개의치 않는다. 부모님도 신경 쓰지 않는다. 마치 사람이 없는 듯 풀숲으로 나뭇가지로 날아든다. 지저귐이 밭을 가득 채운다. 그들의 세상을 뒤로하고 낙엽 덮인 산길 위로 조용히 밭을 떠난다. (24.11.10)
사진_내곡리가는길ⓒsoon(24.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