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항상샬롬 Dec 22. 2020

거북이를 먹으라고요?

이런저런 이야기 67

  2003년 20대 초중반친구들과 동남아로 단기선교를 다녀온 적이 있다. 비용의 반은 후원, 반은 자비를 내고 회사에는 연월차를 다 당겨 다녀온 선교였다.

  

  일주일 동안 인도네시아 빈섬에 있는 마을에 가서 우리가 준비해 간 선교금과 학용품들

(연필, 지우개, 공책, 축구공, 붉은 악마 유니폼 등등ㅡ그 당시 2002 한일 월드컵

붐으로 한창 인기였다는) 그리고 옷 등을 전달해주고 학교 건물에 페인트도 칠해주고 수학 공부도 도와주고 교회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등의 선교를 했다.


  일주일간 지내면서 그 마을의 추장님댁에서 자주 식사를 했다. 어느 날도 추장님 댁에 간단한 식사를 하려고 모였고 나는 마당에서 친구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있는데 뭔가가 천천히 움직고 있었다.


  헉. 티브이나 동물원에서만 본 적 있는 엄청 커다란 거북이가 엉금엉금 마당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친구와 나는 너무 신기하고 흥분해서 "우와, 거북이다!"라고 소리쳤고 거북이 등을 살짝 만져보기도 하고 근처 해변에 있는 해초풀도 주는 등 거북이와 나게 다.


   잠시 후 거북이가 마당에 들어왔단 소리에 집 안에 있던 사람들다들 나와서 거북이를 같이 구경했다.


  그런데 집안에 계시던 추장님이 거북이를 보자마자 마당으로 달려 나오시더니 거북이를 덥석 붙잡는 것이었다. '왜 그러시지?' 하며 궁금해하고 있는데 현지 선교사님이 옆에서 해주 이랬다.


  거북이는 이곳에서 길조의 상징인데 특히 집안으로 들어오는 거북이는 더욱 좋은 일이다. 그래서 그 거북이는 잡아서 손님들께 대접하고 함께 나누어야 하는 풍습이 있다는 것이었다.


  방금 전까지 같이 놀고 먹이도 주던 거북이인데. 특히나 원래도 엄청 슬프고 불쌍한 눈을 가진 거북이를 잡아먹어야 한다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다.


  1시간 정도 지났으려나. 추장님 아내분이 그릇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다른 음식들과 함께 가져오셨다. 수육처럼 생긴 고기. 바로 거북이 고기였다.


  선교사님은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추장님 부부가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이니 예의상 조금씩 맛을 보라고 하셨고 다들 한 점씩 입에 넣고 먹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서 고기 한 점을 입안에 넣었는데 자꾸만 눈에 히는 거북이모습.


  오물오물 씹다 보니 거북이 고기 맛은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섞인 오묘한 맛이었다. 다들 잘들 먹는 편이었고 나는 더 이상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서 다른 반찬들만 조금 깨작거리며 먹 기억이 난다.


  그날 밤 추장님의 수상가옥 집에서 선교 팀원들 열댓 명 모두가 다 같이 하룻밤을 묵었는데 나무로 간단하게 만든 판자 위에 얇은 지붕이 있는 작은 나무집으로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는 그런 집이었다.


  출렁출렁 대는 수상가옥 집에 누워 밤하늘을 보는데 자꾸만 거북이가 생각났다. 문화적 충격이 그 당시 꽤 컸나 보다. 20대 초중반의 나이였으니 더더욱 그랬을 것 같다.


  그리고 희한하게 선교 팀원들 거의 대부분이 밤새 뱃멀미를 하며 고생을 했는데 나만 혼자 쌩쌩했다는 사실. 음. 충격이 커서 그날 내내 식사를 거의 안 해서인가.


  암튼 나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거북이의 명복을 조용히 빌어 주었고 그때 이후 거북이가 나오는 책이나 티브이를 보면 그날의 추억들이 떠오른다. (어제도 네 살 둘째에게 거북이가 나오는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소환된 기억)



동물원에서 본 거북이

  마흔넘어 다시 시작된 육아 이야기

  https://brunch.co.kr/@sodotel/246


  

작가의 이전글 내 글이 실린 책이라니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