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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상샬롬 May 25. 2020

남자에게 고백받고 슬퍼서 울다?

이런저런 이야기 4

  20대 중반 즈음, 태어나서 평생 살아온 동네를 떠나 아빠의 직장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다니던 교회도 대중교통으로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이니 너무 멀어서 집 근처로 옮기게 되었다.


  이사를 갔지만 청년부 총무를 맡다가 옮겨서인지 청년부 회장 오빠에게 좋은 성경말씀 문자도 매일 오고 안부도 자주 묻고 해서 참 고마웠다.


  어느 날 그 회장 오빠에게 전화가 왔는데 소개팅을 시켜줄 테니 이번 주에 만나자는 연락이었다. 나는 아싸 하며 기뻐했고  오빠가 알려준 곳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나름 치장을 하고 소개팅 장소로 나갔다. 조용하고 이쁜 카페였다. 회장 오빠가 먼저 와 있었다. 오빠와 오랜만에 보니 이런저런 얘기도 하소개팅할 사람을 기다렸다.   


  20-30분이 지나도 소개팅할 사람이 나오지 않자 오빠는 연락을 해보겠다며 자주 밖을 왔다 갔다 했고 화장실도 자주 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 사람이 좀 늦나 보다, 오빠가 미안해서 저런가 보다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다 1시간이 지났으려나. 오빠가 이상하게 긴장하고 초조해하는 얼굴로 미안하다며 갑자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더니 다른 한 손으로 자기 자리 옆 겉옷을 들더니 그 안에 있는 꽃다발을 나에게 주는 것이었다. 


'헉'

너무  잡힌 손을 빼며 왜 그러냐고 묻자 오빠는 소개팅할 사람은 사실 고 자기랑 소개팅하는 거라며 예전부터 내가 좋았는데 이사를 가면서 자기 마음이 더 확실해졌다며 좋아한다고 고백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서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내 생각을 제대로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녀관계는 확실하게 맺고 끊어야 한다는 나의 철칙 때문이었다. 괜히 어정쩡하게 대해서 서로 기대감을 갖는 것이 더 안 좋은 것이라고 늘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빠에게 이야기했다. 오빠를 중학교 때부터 알게 돼서 남자가 아닌 친오빠처럼 느껴진다. 오빠가 말한 것은 못 들은 것으로 하겠다며 일어나려 하자 오빠는 다시 한번 놀라게 해 미안하다며 꽃이라도 가져가라며 나에게 꽃다발을 쥐어주었다.


  집에 오는 버스를 탔는데 갑자기 울컥하며 눈물이 났다. 일단 너무 놀랐고 그 상황이 무서웠고 불편했고 그 오빠랑은 이제 편하게 연락할 수 없게 되었고 미안했고 그냥 슬프고 속상했다. 나름 잘생기고 착하고 성격 좋은 오빠였는데 왜 나에게 고백을 한 건지. 오만가지 생각들이 났다.


  다음날 교회에서 회장 오빠와 절친인 다른 오빠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자기와 회장 오빠가 그 카페를 며칠이나 걸려 같이 정했고 어떻게 언제 고백을 할 건지도 연습했으며 회장 오빠가 여자에게 고백이란 것도 태어나 처음 해보는 것이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힘들게 준비했는데 고백도 안 받아주고 너무한 거 아니냐고 장난을 치며 말해서 기분이 조금 풀렸던 것 같다.


  그 이후 회장 오빠와는 더 이상 연락도 하지 않게 되었고 시간이 흘러 내 결혼식장에 온 회장 오빠와 오랜만에 웃으며 편하게 잠깐 이야기를 했고 회장 오빠도 여자 친구가 생겼고 나중에 결혼까지 해서 아기도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재미있는 해프닝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는 어려서 그랬는지 뭐가 그리 슬퍼서 울었는지 모르겠다.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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