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까지 여중, 여고, 여자과 대학을 나온 나는 딱히 남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20대 중반부터 소개팅을 서너 번 해봤고 초등학생 때부터 절친인 친구들 네 명이서 단체 소개팅을 한번 나가본 것이 전부였다.
단체 소개팅은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니 재미있을 거 같아서 어느 날 단체 소개팅을 주선받아 친구들과 약속 장소로 나갔다. 장소는 집 근처 대학교 앞 레스토랑이었다. 약속된 시간에 도착하니 벌써 남자분들 네 명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단체 소개팅은 처음이었지만 우리 모두 동갑이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통하는 것도 많고 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많이 웃고 떠들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두 시간여를 레스토랑에서 이야기 꽃을 피우다가 2차를 가기로 했다.
호프집을 갈지 볼링장 또는 노래방으로 갈지를 정하려고 남자들과 얘기를 하면서 다 같이 일어섰는데 아뿔싸 남자분들 네 명 모두 우리보다 키가 다 작았다. 아니 작아 보이는 건가? 내 친구들의 키는 한 명이 158센티정도 였고 나머지 나를 포함해서 세명은 160센티가 넘었다. 게다가 우리 모두 구두까지 신으니 키가 더 커 보였으리라.
아무튼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남자분들도 약간 놀라는 눈치고 우리들도 놀라는 순간이었다. 그러고는 남자분들이 먼저 건물 밖 1층으로 내려가 있겠다고 했고 우리도 뒤늦게 내려가 보니 남자분들 중 한두 명이 급한 볼일이 있어 잠깐 자리를 비웠다가 다시 합류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자 우리는 그럼 다시 날을 잡아서 다시 모이자고 약속을 했고 헤어졌다. 진짜 바쁜 일이 생긴 건지, 키 때문에 놀라서인지는 확실하게 모르겠지만 아마도 후자인 것 같다. 바쁜 사람 빼고 나머지는 남아서 같이 시간을 보낼 줄 알았는데 날을 다시 잡자는 말에 바로 수긍을 했으니 말이다. 남자분들과 헤어지고 우리는 괜한 허탈감에 노래방을 갔다가 차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고 집에 돌아온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나는 나도 잘난 외모는 아니기에 남자의 키나 외모가 뭐 그리 중요하나, 성격 좋고 유머러스한 게 최고라는 생각을 늘 마음에 두고 지냈었다. 실제로 나보다는 키가 작은 친한 오빠가 있었는데 나름 오빠와 서로 썸을 타본 적이 있었다. 늘 다부지고 자신감 있고 똑똑하고 유머러스한 그 오빠가 너무나 좋아서 고백까지 할 뻔했지만 내가 고백하기 바로 며칠 전에 타이밍을 놓쳐 다른 여성분과 사귄다는 걸 알게 되어 연애에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랬던 내가 단체 소개팅을 한 그날에는 그 마음들이 무참히 깨지는 순간이었다. 아마도 친구들과 함께 나간 첫 단체 소개팅이다 보니 재미도 있고 기대가 컸었나 보다. 분위기도 너무 좋고 대화도 잘 통해서 아마 더 잘될 거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웃음이 나온다. 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서로들 놀랐던 그 순간이 말이다. 20대의 첫 단체 소개팅을 떠올리며 오늘도 또 하나의 추억을 소환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