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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상샬롬 Jul 10. 2023

소개팅하고 납치당할 뻔

이런저런 이야기 181

22살 조카랑 통화를 하다가 낼모레 소개팅을 할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얘기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나도 20여 년 전 어느 날 소개팅을 받은 기억이 나면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그때 이야기를 조카에게도 해주었다.


친한 친구의 소개로 소개팅을 한번 나간 적이 있었다. 내가 20대 중반의 나이 무렵이었다. 소개팅하기 전날 상대방에게 전화가 왔는데 차를 가져올 테니 약속장소에서 기다리라는 친절한 전화를 받았다.


다음날 약속장소에 나갔더니 벌써 차가 주차되어 있었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그분은 나보다 두세 살 위 정도의 나이였고 대학원생이라고 말했다. 차는 아빠한테 빌려서 가져왔다고. 키는 내가 원하는 180 이상은 아니었지만 얼굴도 준수하고 매너도 좋고 재미있는 말도 잘하는 분이었다.


그분의 차를 타고 밥을 먹으러 가는데 경기도 외곽 쪽으로 향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곳인데 분위기도 좋고 음식도 맛있다고 했다. 서울에서 살던 나는 거리가 좀 멀어서 부담스러웠지만 같이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니 그러려니 했다.


즐거운 이야기를 하며 밥을 맛있게 다 먹었을 즈음 그분이 내 손금을 봐주겠다며 손을 잡았다. 그러더니 내 옆자리로 와서 더 자세히 봐주겠다고 했다. 갑자기 너무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게 느낌이 너무 싫었다.


손금을 봐주겠다고 손을 잡은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내 옆자리로 굳이 올 필요는 없으니 부담스럽기도 하고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손금은 안 봐주셔도 된다고 정중하게 얘기했다.


그러자 그분은 분위기가 싸해진 걸 느꼈는지 다른 데 가서 차 한잔을 하자고 했다. 좋다고 하며 같이 차를 탔다. 차를 타고 도로를 주행하는데 곧 고속도로로 진입한다는 이정표가 보였다.


나는 너무 놀라서 그분께 물었다.

"우리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설마 고속도로 타는 거예요?"

"에이, 알 거 다 알면서 갑자기 왜 모르는 척이에요? 내가 좋은데 데려갈게요. 조금만 더 가면 멋진 모텔이 나와요."


헉, 세상에. 미친 사람을 만났구나 싶어 나는 너무 놀라서 당장 차를 세우지 않으면 뛰어내리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분은 더 짜증을 나면서 조용히 가만히 가자고 했다.


나는 바로 안전벨트를 풀고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문이 조금 열렸다. 그랬더니 그분이 막 욕을 하면서 지금 뭐 하는 짓이냐며 빨리 문을 닫으라고 했다. 나는 내가 다치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당신 같은 사람이랑 같이 못 간다고 말했고 발을 밖으로 빼려고 하자 그분이 차를 급정거시켰다.


그리고 나는 차가 가는 반대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리고 또 달렸다. 뒤에서 쌍욕소리가 나더니 급발진을 하며 차가 가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덜덜덜 떨면서 근처 어디라도 도움을 청할 곳이 있나 보았다.

차만 다니는 도로여서 갓길로 한참을 걷다 보니 길 안쪽으로 작은 구멍가게가 하나 보였고 문을 열자 여사장님이 계셨다.


그분을 보자마자 참았던 눈물이 펑펑 쏟아졌고 여사장님께 자조치종을 말했더니 큰일 날 뻔했다며 물을 주시면서 안심을 시켜주셨다. 그리고 택시를 불러주셔서 나는 제일 가까운 지하철역까지 택시를 타고 왔고 집에 무사히 올 수가 있었다.


집에 와서 마음을 좀 추스른 후 소개를 시켜준 친구에게 전화를 했더니 엄청 놀라면서 그럴 사람이 아닌데 자신도 알아보겠다며 전화를 끊었고 잠시 후 다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그랬더니 원래 소개팅 받을 사람이 못 오게 돼서 다른 사람이 오기로 했는데 또 그 사람도 못 오게 되어 대타로 나올 사람을 구하다 보니 지인의 지인이 되는 그 사람이 나오게 된 것이었다.


친구도 원래 소개팅을 나오기로 했던 사람도 나에게 엄청 미안해하며 죽을죄를 지었다고 사과를 했고 나는 그 이후 트라우마가 생겨 소개팅을 못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었다. 그래도 그때 그 사람의 차가 최신형이 아니고 구형이라서 보조석에서도 문이 열려 다행이었고 구멍가게 사장님이 그쪽은 버스가 오지 않는 곳이라며 택시를 불러주셔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때는 정말 내가 어디가 부러지거나 다치는 한이 있어도 그 차를 타고 가지 않으려고 했다. 진짜로 차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는데 그 사람도 큰일 나겠다 싶어 차를 세운 듯했다.


잊으려고 노력해도 잊히지가 않는 무섭고 더러운 기억이지만 나 같은 경험을 하는 분들이 절대로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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