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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상샬롬 Feb 19. 2021

아빠 앞에서 춤추다가 맞은 오빠

이런저런 이야기 80

  나에게는 형제가 딱 한 명 있다. 두 살 터울의 오빠와 함께 둘이서 단란하게 남매로 자랐다. 1980년대 어느 날 오빠는 6-7살 정도의 나이였고 나는 4-5살 정도의 나이였다.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고 엄마와 오빠한테 자주 들은 이야기인데 그날따라 저녁을 일찍 드시고 아빠는 티브이를 열심히 보고 계셨단다. 그런데 갑자기 오빠가 티브이 바로 앞에서 개다리춤을 추며 장난을 쳤다.


  아빠는 티브이가 안보이니 오빠에게 비키라고 계속 말씀하셨고 오빠는 두세 번을 더 까불대며 티브이 앞에서 춤을 추다가 아빠한테 한 대를 맞았다. 오빠는 아빠한테 맞은 게 서글퍼 엉엉 울었고 나는 오빠가 우니까 따라서 울었다. 그날 아빠와 엄마는 부부싸움을 크게 하셨다.


  아빠가 그날따라 저녁을 일찍 드시고 보고 계셨던 티브이 방송은 생방송 권투 중계였다. 그 당시 엄청난 화제가 된 권투 중계였는데 중요한 순간마다 오빠가 자꾸 작은 티브이 화면을 가리니 아빠는 화가 났고 제일 중요한 순간을 보지 못할 뻔한 아빠는 홧김에 오빠를 한 대 때리신 거였다. 그날이 오빠에게는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맞은 순간이었다.


  가족들이 모였을 때 이 에피소드를 엄마와 오빠한테 자주 듣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아빠는 그냥 웃으시면서 모른 체 하시거나 그 자리를 피하시고 오빠는 늘 억울했다는 말투로 이야기해주는데 들을 때마다 어찌나 웃기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의 마음도, 오빠의 마음도, 그리고 부부싸움까지 하셨던 두 분의 마음도 모두 이해가 되는 상황이지만 그래도 아빠가 한 번만 더 참고 오빠에게 좋게 타일러서 권투 중계가 끝나고 춤을 보여달라고 하셨다면 오빠를 때리는 상황과 부부싸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에피소드를 들을 때마다 진짜 웃겼는데 이제는 웃기지가 않다. 요즘 내가 11살, 5살 남매를 육아하다 보니 나도 욱할 때가 많다. 그래서 화를 많이 내는데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어도 되는 상황에서 크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나면 왜 그렇게 후회가 되던지. 아마 아빠도 그때 오빠를 때리고 나서 나랑 같은 마음이셨을 것 같다.


  오늘 하루도 내가 아이들에게 불필요한 화를 얼마나 냈는지 되돌아보고 후회하고 있다. 내일은 오늘보다 화를 덜 내야지 라고 다짐해본다.



딸아이와 보고 온 오즈의 마법사 뮤지컬 공연

  


https://brunch.co.kr/@sodotel/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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