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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상샬롬 Feb 13. 2021

할아버지가 놀러 오시면

이런저런 이야기 78

  양가 부모님들께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르는 우리 두 아이를 보면 나도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외가 쪽 할아버지 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친가 쪽 할아버지와 할머니만 계셨는데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신 후 적적하고 우울해지신 할아버지는 여기저기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을 자주 다니시곤 했다. 자주 다시셨던 곳 중 우리 집도 포함되었는데 할아버지가 계신 큰집에서 가까운 편이라 버스를 타시고 자주 오시곤 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아빠는 직장에, 엄마는 잠시 부업일을 나가시고 오빠는 친구들과 놀러 나가서 나 혼자 집에 있을 때 할아버지가 자주 오셨는데 애교도 별로 없고 털털했던 나는 딱히 할아버지와 할 말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엄마가 하셨던 것처럼 과자 같은 간식을 할아버지 앞에 놓아 드리고 할아버지가 묻는 말에만 간간히 대답을 하고 그날 숙제나 기타 등등의 내 할 일만 했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도 그냥 내가 하는 걸 가만히 미소 지으며 30여분 정도 지켜보시다가 집으로 돌아가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와 우리 집에서 놀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오셨다. 그러자 내 친구는 할아버지에게 큰소리로 인사를 하더니 "할아버지, 이거 우리가 만든 건데요. 잘 만들었죠?", "할아버지, 이 사탕은 진짜 맛있는 거예요. 하나 드셔 보세요." 라며 사탕을 까서 입안에 넣어드리고 어깨와 팔다리를 안마해드리는 등 할아버지에게 아주 살갑고 애교 있게 대해드리는 것이었다.


  그 친구가 할아버지에게 하는 행동을 보고 나는 나름 충격을 받았고 속으로 '아, 친구처럼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하는 거구나. 그래야 더 좋아하시는구나.'라는 걸 느꼈다.


  그 뒤로 나도 할아버지가 오시면 친구가 했던 것처럼 먼저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어 드리고 내가 그린 그림을 보여드리고 숙제도 보여드리고 책도 읽어드리는 등의 행동을 했더니 할아버지는 더 크게 많이 웃으시다가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러자 나도 기분이 좋아졌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몇 달 뒤 우리는 아빠의 직장문제로 이사를 해서 큰집과 멀어졌고 할아버지는 우리 집에 자주 오시질 못했다.


  우리가 이사하고 1,2년이 지난 어느 날 할아버지는 90세가 넘어 주무시듯이 돌아가셨다. 나와 오빠는 어리다고 집에 있으라 해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장례식은 보지 못했지만 그냥 며칠을 슬픈 마음으로 지냈던 기억이 난다.


  믿어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할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할아버지를 더 많이 웃겨 드리지 못해 아쉬움이 들었던 것 같다.


  앞으로는 살아가면서 후회할 일은 하지 말자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든다.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유모차에 손녀딸(우리 큰 딸아이)을 태워 산책 가는 길

https://brunch.co.kr/@sodotel/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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