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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상샬롬 Jan 25. 2021

무서웠던 기억

이런저런 이야기 74

  마흔 중반을 넘게 살면서 진짜 무서웠던 적이 두세 번 있는데 그중 하나가 신혼초에 있었던 일이다.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의 학원에서 수학강사로 일을 다녔었다.


  어느 날 수업을 다 마치고 상담전화를 다른 날보다 조금 오래 해서 7시가 조금 넘어 퇴근을 했다. 초겨울 밤이기도 하고 걸어오는 길이 좀 한적해서 버스를 타고 집 근처에서 내렸다.


  그날따라 몸이 좀 피곤해서 지름길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집으로 가는 지름길은 돌아서 가는 것보다 훨씬 빠르긴 했지만 좁은 골목이고 컴컴했다. 상가와 빌라들 사이에 있는 골목이었고 대략 100미터 정도 되는 거리였는데 후다닥 뛰어가야겠다 생각하며 버스에서 내려 건너편으로 길을 건넜다.


  길을 건너는데 왼쪽에서 남자 두 명이 내 쪽으로 오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지름길로 갈까 그냥 돌아서 갈까 또 고민을 했고 지름길로 가려고 몇 발자국을 떼었다가 다시 뒤돌아서 오래 걸리는 길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 남자 두 명이 내가 가려고 했던 지름길 입구에서 돌아 나오자 '멈칫' 하고 걸음을 멈추는 것이다.


  느낌이 싸해서 나는 바로 근처에 있던 주유소로 뛰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그 두 남자는 "에이, 씨"하며 욕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뒤를 돌아 후다닥 다른 쪽으로 갔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남편과 울다시피 통화를 했고 남편은 집에 거의 다 왔으니 데리러 온다면서 주유소 안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남편을 기다리면서 지름길로 갔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생각하니 끔찍했다. 등에서 식은땀도 나고 정말 무서웠다. 그런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그 당시 핸드백을 순간적으로 훔쳐가는 일명 쓰리꾼(소매치기)들이 성행했는데 아마도 내 핸드백을 노렸던 게 아닌가 싶다. 한적한 길에 여자 혼자 으쓱한 골목길로 들어가려고 하는 걸 보고 내 뒤를 따라오려고 했는데 내가 갑자기 몸을 돌려 다른 길로 갔으니 당황스럽고 열이 받았을 것 같다. 어쩌면 핸드백뿐만이 아니라 더 심한 일을 당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뒤로 다시는 지름길은 쳐다보지도 않았고 무조건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환한 곳으로 다니고 오후 6시나 7시가 지나 해가 질 무렵에 다닐 때는 앞뒤 좌우를 살피는 습관도 생겼다. 원래도 겁이 많은 나는 더 겁이 많아졌고 예민해졌다. 그래서인지 우리 딸도 엄청 겁이 많다. 쿨럭. 작은 소리에도 놀라고 자동차가 오는 소리만 들어도 저만치 떨어져서 다닌다.  


  우리 딸에게는, 아니 세상의 모든 딸들과 모든 여성분들은 내가 겪은 이런 일들, 더 무섭고 불미스러운 일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둘째 아들이 박물관에서 제일 무서워했던 공룡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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