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고 싶은 마음에
부서 배치를 받고 일을 하면서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부담'이었다
부담이 감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학교가 아니라 일터이다
보장된 대가를 받는 만큼 내가 맡은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프로 집단이라는 말이다
그로 인한 책임과 부담은 한 철 추르르 쏟아지고 마는 장마가 아니라
매일 밤 쏟아지는 샤워기의 물줄기와 같아서 마를 틈 없이 나를 축축하게 적셔 놓았다
나의 실수로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칠지 모른다는 두려움
맡은 업무를 잘 해내지 못해서 무능력한 사람으로 보일지 모른다는 두려움
신입 사원한테 그렇게 대단한 일을 맡기지도 않거니와
선배나 리더들은 정작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데
지레 겁을 먹고 경직된 행동들은 하지 않아도 될 실수도 불러온다
더군다나 나는 법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서
혹여 내 덤벙거리는 성격으로 인해 부서나 회사에 어떤 피해가 발생할까 노심초사하며
입사 초엔 더더욱 쉽게, 그리고 완전히 업무 생각을 놓지 못했던 것 같다
삶과 업무를 분리시키지 못한 것이다
월요일이 무서웠고 아침이 무서웠다
아직 끝내지 못한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은 퇴근을 하고 난 후에도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같은 회차를 반복재생하며
내가 설정한 납기가 적정한지 검토하라고 몇 번이고 재촉하였다
몸만 사무실을 이탈하였을 뿐
OFF 되지 않은 머릿속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부담이라는 눈덩이를
혼자 굴리고 굴려서
기어코 설산을 하나 만들어 놓고
그 웅장함에 압도되어 버린 것이다
좋게 생각해 보면 그만큼 책임감을 갖고 있다는 뜻이고
그만큼 일을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는 뜻이다
'이 정도는 선배나 리더한테 물어보지 않고 혼자 결정해도 되지 않나?'
'이건 내 생각대로 결정했다가 실수할 것 같은데..'
하루에도 몇 번씩 질문을 할지 말 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다들 바빠 보이는데 내가 너무 사소한 걸 물어봐서 시간을 뺏는 건 아닐지
그렇게 내 기준대로 판단해서 처리했다가 더 큰 파장을 불러오는 건 아닐지
피곤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데
부담감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었다
근무시간에 짬 내서 커피 한 잔 마시고 고충을 토로할 동기가 없었고
퇴근하고 술 한 잔 하거나 시시콜콜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가 없었다
부담이라는 설산은 타지생활이라는 악천후를 만나서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외로움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