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외롭게 만든 건 결국 나였음을
연고도, 동기도 없는 곳에서의 타지생활은
같은 직무 동기 23명 중에서
나 혼자 배치받게 된 우리 사업장, 우리 팀은
규모도 제일 작고 신입도 잘 뽑지 않아서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팀원이 거의 없었다
다른 사업장의 동기들은 근무하다가 중간에 동기들끼리 커피타임도 갖고
퇴근하고 종종 술도 마시는데 난 그럴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혼자 떨어진 날 위해 동기들은 늘 챙겨주고 불러주었다
하지만 다 같이 만나려면 왕복 3시간 이상의 거리를 다녀와야 하고
각자 부서 환경이 다르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낄 수 없는 대화 소재의 비중이 늘어감에 속상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연고가 없는 지역에서의 동기도 없는 신입의 삶이란
퇴근하고 나서도 번개든 선약이든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없다는 뜻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의 그 모든 고충을 혼자 눌러 담아야 했다
너무 힘들고 말할 곳도 없을 땐 학창 시절 친구들한테 전화를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다
서로 다른 일을 해서 공감도 안 되는 말을 계속 붙잡고 토로할 수도 없고
그 친구도 분명 고충이 있을 텐데 나 힘든 것만 쏟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힘들다고 울면 나보다 가슴 찢어질 우리 부모님한테는 말할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하루하루를 들이쉴 수가 없어서 숨을 참았다
주말에 한 번에 내쉬려고
외로움을 외면하기 위해서 내가 선택한 방법
외로움을 외면하기 위해 나는 친구들과 만나게 될 주말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단 하루의 주말도 혼자 보낼 일 없도록 약속을 잡았다
그간 열심히 지속해 온 내 습관들을
꾸준한 독서, 뉴스 청취 그 밖의 모든 자기 개발 행위들을
어렵게 쌓아온 것에 비해 손쉽게 놓아버렸다
사실 내 멘탈을 굳건히 지탱해주고 있던 건 그것들인데
그럴 여유가 없다고, 그렇다고 스스로를 착각시키며
다 놓아버린 채 주말만을 기다리고, 그것에만 의지했다
평일엔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드니까
자기 개발이고 뭐고 그냥 눈을 꼭 감고, 숨을 꾹 참고
상상 속의 시계 초침만 강제로 돌리며 시간이 가길 바랐다
현실 속의 내 시간은 그 자리 그대로였는데
주말에 친구들 만나서 놀고 편안한 대화를 하면서 다시 회복하는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그렇게 꾸역꾸역 삼킬 줄만 알고
소화시키지 못한 날들은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역류하기 시작했다
내가 우울했던 진짜 이유
아무리 주말마다 친한 친구들을 만나서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곳을 가도
공허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물 위에 떨어뜨린 잉크 한 방울처럼 번져가는 우울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미 나를 까맣게 물들이고 수면 위로 올라온 뒤에야 그 깊은 것을 마주했다
혼자여서 외로운 줄 알았다
그래서 혼자 했던 모든 것들을 외면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나를 위한 방법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외면하고 놓아버린 모든 것들이
사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이었고
그것들을 다시 설득해서 데려오기 시작했다
나와 약속을 잡고, 나와 시간을 보냈다
일이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퇴근하고 조금이라도 책을 보고, 일기를 쓰고, 눈을 감은 채 생각을 정리하였다
주말에 친구를 만나는 시간을 줄이고 나와 보내는 시간을 늘렸다
그러다 보니 늘 불안으로 두근거리던 내 심장이 본래의 박동을 찾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외로운 시간에 우울하고 불안해할 것이 아니라
외로운 시간을 건강하게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워갔다
나는 나와 보내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함께여도 외로울 수 있고, 혼자여도 외롭지 않을 수 있는데
그건 혼자 있는 시간들을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보낼지 선택하는 나에게 달린 문제였던 것이다
이제는 혼자가 무섭지 않고
이곳에 동기가, 친구가 없음을 탓하지 않는다
혼자 보내는 시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으며
나는 오직 나에게만 의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