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을 세워도 계획대로 못하는 사람
업무에 적응을 하면 할수록 일이 더 쉽고 편해질 줄 알았다
뭐든 처음이 어려운 건데
그럼 적응하고 익숙해지고 나면 수월해지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당연한 게 아니었다
회사의 기막힌 의도인지, 부서의 고도의 전략인지는 몰라도
회사 일은 늘어나는 속도만 다를 뿐 줄어들지는 않는 물가와 닮아서
적당히 편하게 살도록 두지를 않았다
우리 팀은 부서 특성상 전부 개인 업무이기 때문에
협업 중인 타 부서 사람들, 부서장을 제외하고는
부서 사람들과 같이 업무를 할 일은 거의 없다
내 업무의 책임자는 전적으로 나이고,
모든 업무 계획을 내가 수립해서 챙겨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핑계를 대보자면, 나는 대문자 P이기 때문이다
계획을 세워서 통제하는 일에 능통치가 않다
늘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일을 하는 스타일이고
더는 미룰 수 없을 때까지 미루다가
최상의 효율로 짧은 시간 내에 일을 처리하는 벼락치기를 선호한다
지금까지는 내 그런 성향으로 인한 피해가
오로지 나에게만 오는 경우가 많아서
특별히 불편하다고 느끼지는 못 하였는데
회사에서는 그런 식으로 일처리를 하면 안 된다
누가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안되리라는 것을 느꼈다
학창 시절에도 단 한 번도 스케줄러 비슷한 걸 써본 적이 없는데
일을 하면서는 아주 사소한 거라도 해야 할 일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놓는다
분명 또 다른 일을 하다가 까먹어 버릴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을 까먹지 않기 위해
어떤 업무를 위한 선행 업무의 선행 업무의 선행 업무의
그 모든 절차의 납기를 일정 내에 챙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적어 놓기 치료법이 어찌어찌 응급 처치는 된 듯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이 더 남았다
바로 저주받은 집중력이다
집에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이
'OO 이는 A를 시키고 기다리면 B를 하고 있어'이다
한 가지 일을 오래 집중해서 하지도 못하고
다른 일에 아주 쉽게 주의를 빼앗긴다
이런 걸 보고 성인 ADHD라고 하던가
어렸을 때부터 그래왔는데 성인 ADHD라고 하기엔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
'성인이 된 ADHD' 정도로 부르면 될 것 같다
회의나 다른 일정이 있는 게 아니면
자리에 앉아서 해야 할 일을 우선순위에 따라 차근차근하면 되는
말로 써 놓으니 더 쉬워 보이는 일을 하면 된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 보면 오늘 계획한 업무 목록 중에 있지도 않은
의식의 흐름상 혹은 누군가 보낸 메일과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다
'지금은 이걸 처리하고 이따가는, 내일은 이걸 해야지'에서
‘지금’은 온 데 간 데 없고 하려고 한 적도 없는 다른 업무를 말이다
업무 특성상 문의도 많이 오고
급하게 알아봐 줘야 하는, 대응할 일이 많다고는 해도
스스로도 너무 정신이 없다고 느낀다
당연히 이런 오락가락 업무 스타일은
아무리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도 납기 관리하기가 어렵기 마련이다
한 자리에 오래 앉아 있어도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마침 취미로 할 수 있는 활동도 찾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미술 학원에 등록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그림으로 전시회를 여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