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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잎지던날 Mar 31. 2017

용기 내어 꺼낸 말

추운 날이었다. 네가 좋아하는 선술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술을 주문한 우리는 천천히 취해갔다.

침묵을 없애려 난 마음에도 없는 소리만 해댔다.


  “여, 여기 분위기 괜찮네. 조용하고.”


술잔을 만지던 네가 말한다.


  “네. 그래서 좋아해요.”


오늘은 술기운을 빌려서라도 네게 고백을 하려 했다. 네 퇴근시간에 맞춰 같은 길을 돌아다니기를 몇 시간. 결코 우연이 아니었지만 어쩌다 우연히 널 만난 것처럼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만든 자리였다. 하지만 어떻게 말해야할지 그 생각만하면 머릿속이 도화지가 됐다. 

결국 난 막차시간이 다 될 때까지 헛소리만 늘어놓았다.


  “이제 가야겠지?”


난 길고 두터운 목도리를 목에 감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널 지하철역에 바래다준다며 함께 걸었다. 걷는 동안에도 난 네게 고백할 기회만을, 네게 할 말들만 되뇌었다.


  “저… 갈게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개찰구 앞이다.


  “조심히 들어가. 도착하면 연락 주고.”


개찰구를 통과하는 너를 보며 못내 아쉬움을 감춘다. 말했어야 했는데. 지금이라도 말해야 할까. 그러는 사이에도 넌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바보 같은 자신을 탓하며 돌아서려 할 때였다. 


  “오빠….”


승차장에 들어가야 할 네가 다시 돌아왔다.


  “저 부탁이 있어요.”


갑작스레 놀라 묻는다.


  “부탁?”


넌 내 목도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목도리 저 빌려주세요.”


그러고 보니 네 하얀 목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추웠을 텐데. 왜 미리 벗어줄 생각을 못했을까. 바보같이. 용기가 없으면 눈치라도 있어야 하거늘.

난 서둘러 목도리를 푸르며 미안함을 감추고자 장난스레 말했다.


  “빌려주면 넌 뭐해줄래?”


건넨 목도리를 받으며 넌 당돌히 말했다.


  “원하는 거 다요.”


나와 달리 너의 눈은 진심이었다. 

고백도 못하던 놈이 갑자기 무슨 용기가 생겼던 걸까. 난 네게 가슴에 있던 말을 꺼냈다.


  “키스해 줘.”


잠시 후 우린 낮은 칸막이 위로 서툰 키스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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