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잎지던날 Sep 02. 2017

할머니와 리어카

오늘도 어김없이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내 앞에 파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가 비틀비틀 가고 있다. 이 리어카의 목적지이기도 한 고물상은 출퇴근길에만 두 개가 있다.

좁은 골목길이라 앞서기가 여유 치 않다. 그 움직임을 보며 나도 느릿느릿 걷는다. 뒤뚱이며 잘 가던 리어카가 갑자기 한쪽으로 푹 쓰러진다. 바퀴가 구덩이에 빠진 모양이다.

리어카는 구덩이를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몇 번을 꿈틀거리다 이내 구덩이로 다시 처박힌다.

나는 리어카 뒤에서 조용히 힘을 준다. 힘을 받은 리어카는 시원하게 구덩이를 빠져나온다.

"아이고, 고맙습니다."라며 고개를 숙이시는 할머니. 나 역시 고개를 숙여 대답을 대신한다. 구덩이를 나온 리어카는 다시 느릿느릿 움직이기 시작한다.


파지 줍는 노인들에게 무더운 날씨보다 무서운 건 비 오는 날이라고 한다. 파지들이 젖기 때문이란다. 젖은 파지들은 내다 팔 수 없다. 그러면 하루를 굶어야 할지도 모른다. 올해는 덥기도 덥거니와 비도 많이 왔다.

하루 이틀 사이로 날이 확 바뀌었다. 벌써 아침저녁으로 쌀쌀하다. 겨울은 순식간에 찾아온다. 추위는 또 다른 시련일 것이다. 더위와 달리 추위는 피할 길도 없다. 살을 에는 추위와 혹독한 바람에도 이 리어카는 이 골목을 지나가겠지. 내 앞에 저 느릿느릿한 리어카만이라도 별일 없었으면 좋겠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할머니와 리어카를 위해 가을이 좀 더 길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가 오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