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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잎지던날 Jan 06. 2018

걱정이더라


  한 어른이라는 범주의 남자가 술자리에서 내게 말했다.     

 

  “요즘 애들은 목표 의식이 없어. 목표를 딱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이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딨어. 안 그래?”     


  난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은 꿈이 있어야 하는데 요즘 애들은 부모가 고생해 번 돈으로 배 따시게 지내니 걱정이 있어 뭐가 있어? 그러니 꿈도 없는 거야. 자고로 젊었을 때 이것저것 고생하면서 꿈을 키워야 하는데 말야.”


  그는 이 자리가 흡사 연설회장이라도 된 것처럼 목소리에 힘주어 이야기했다. 그러나 함께 있는 어느 누구 하나 명확히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그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간간히 고개만 끄덕였다.


  “나 때는 말이야 당장 오늘 먹을 걱정에 못할 게 없었다고. 근데 요즘 애들은 이 일은 힘들어서 싫다, 저 일은 돈이 적어서 싫다…. 오늘 그만둔 녀석만 해도 그래. 힘들어서 그만두겠다니, 이게 말이야 방귀야?”


  그의 말대로 오늘 신입 하나가 그만뒀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지 불과 두 달 남짓 된 녀석이었다. 신입이 그만둔다 말했을 때 나는 말리지 않았다. 입사한 이후로 단 하루도 빠짐없이 10시 이전에 끝난 적 없는 회사다. 나 같아도 다니기 싫었다. 오늘 자리를 정리하는 신입의 모습을 나는 존경의 눈으로 바라봤다.


  “취업난 그런 거 다 도전의식이 없어서 나오는 말이야. 취업 안 된다고 투덜거리고 있을 게 아니라 사업을 하던가, 아니면 공부를 더 하던 해야지 그저 방구석에 자빠져 있는 게 말이나 되냐고. 취업 걱정? 그것도 다 자기 배가 불러서 하는 소리지. 걔네들은 진짜 걱정이 뭔지 모른다니깐. 봐봐, 옛날에 비하면 지금 얼마나 살기 좋냐? 안 그래? 취업 안 된다고 징징거릴 게 아니라 노력을 해야지 노력을.”


  그의 말이 꼬부라져 나왔지만 끊이지는 않았다. 난 조용히 술잔만을 기울였고 다른 이들도 아무 말 없이 그의 말만 들었다. 어쩌면 듣는 척만 했는지도 모른다. 나처럼.

  빈 소주병이 테이블 지분 삼분의 일을 차지하고 나서야 술자리는 끝이 났다.



  며칠 뒤 어린 후배가 술자리를 청해왔다.


  “형. 저는 요즘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거 없어?”     

  “네…. 없어요.”     

  “그럼 좋아하는 건?”     


  녀석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서글픈 미소였다.     


  “그것도 잘 모르겠어서 고민이에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좋아하는 것도 없어서요. 그래서 하고 싶은 걸 찾은 사람 보면 참 부러워요.”


  후배는 천천히 술잔을 비웠다. 그의 잔이 비워질 동안에도 난 아무런 대답을 주지 못했다. 조용히 그의 비워진 잔에 술을 채웠다.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걱정은 누구나 있다. 돈, 일, 건강.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그 걱정에 크고 작음은 없다. 걱정의 크기는 본인만 알 수 있으니까. 그래서 누구도 타인의 걱정거리에 대한 고단함을 정의할 수는 없다.

  

세상이 좋아졌다한들 어찌 아이들의 걱정거리가 작다 말할 수 있을까. 꿈도, 좋아하는 것도 찾기 힘든 세상에 던져진 아이들의 고민도 당장에 먹고 살 걱정만큼이나 힘들고 고단할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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