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엄마가 김밥을 싸면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김밥 만드는 모습을 구경하고는 했다.
까만 김 위에 간을 한 흰밥을 펴 놓고 햄과 계란, 시금치, 단무지, 게맛살 등을 올리고는 돌돌 말면 길고 까만 김밥이 만들어졌다.
엄마는 이렇게 만든 김밥을 바로 썰지 않고 참기름을 한 번 바른 후 약불로 프라이팬에 잘 돌려가며 구웠다. 이렇게 하면 밥을 감싸고 있는 김이 탱탱해져 잘 터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참기름이 김밥에 잘 배어 더 고소해진다, 는 게 엄마의 주장이었다. 정작 먹는 나는 그 차이를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잘 구워진 김밥은 다시 도마에 옮겨 칼면을 김밥에 쓱쓱 문질러주고 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썰어냈다. 엄마의 칼질에 단면을 드러낸 김밥은 꼭 오색 저고리를 입은 것처럼 알록달록 했다.
다 썬 김밥은 이제 도시락에 하나씩 옮겨 담는데 김밥 꽁다리는 항상 도시락이 아닌 내 입 속으로 들어갔다. 김밥 꽁다리는 제아무리 잘 썬다 해도 정리되지 않은 속 재료들 때문에 들쭉날쭉하다. 그래서 김밥을 층층이 쌓아야 하는 도시락의 특성상 꽁다리는 넣지 않기 마련이다. 제조공정 결과로만 보자면 불량품인 셈이다.
불량품일지라도 나는 김밥 꽁다리를 더 좋아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꽁다리가 더 맛있다. 설명하라면 할 수는 없지만 잘 썰어진 김밥과는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있다. 김밥 꽁다리만 따로 팔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힘들겠지?
예전 김밥이 갖는 이미지라고 하면 특별한 날 먹는 특식 같은 느낌이 있었다. 계란은 잘 부쳐 가지런히 잘라놓고 시금치는 삶아서 무쳐 놓아야 하고, 당근도 채 썰어 볶고, 햄도 미리 적당한 크기로 잘라야 한다. 밥도 갓 지어 소금과 참기름 넣고 잘 버무리고 나서야 비로소 재료 준비가 끝난다. 후에도 재료를 넣고, 말고, 썰고, 싸고. 먹긴 쉽지만 만드는 건 손이 여간 많이 가는 게 아니다. 그래서 김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은 고작 소풍날 정도였다.
이런 김밥의 위상도 요즘은 많이 떨어졌다. 어디 가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식사대용 정도의 대접을 받고 있다. 끼니를 못 챙겨 급하게 먹는 음식 정도.
뷔페에서도 김밥은 영 인기가 떨어진다. 개인적으로도 초밥이나 샌드위치를 먹었음 먹었지 김밥을 먹진 않는다. 배는 확실히 부르겠지만 뷔페는 오히려 배가 차면 곤란한 곳 아니던가.
게다가 요즘은 김밥천국이 천지에 널렸다. 천오백 원만 내면(가게마다 다르겠지만) 5분만에 김밥을 뚝딱 만들어낸다. 출근시간에는 미리 만들어 은박지에 포장해 놓아 그마저도 안 걸린다. 김밥천국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고 예전과 달리 이제는 쉽게 먹을 수 있다는 소리다.
그렇다고 맛이 떨어졌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희소성이 떨어지니 김밥을 먹고 있으면 특별하다는 느낌보단 어쩐지 처량 맞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점심 뭐 먹었냐는 물음에 김밥 먹었다 대답하면 왜?라고 반문해오는 걸 보면 처량한 게 맞다. 부정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어 김밥을 먹는 경우가 많으니 딱히 내세울만한 변명거리도 없다.
각설하고, 김밥 꽁다리가 더 맛있는 이유를 굳이 찾자면 한 줄에 두 개만 나오기 때문 아닐까. 원래 귀한 건 더 맛있는 법. 이래나 저래나 희소성 문제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