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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Aug 13. 2021

마흔넷,꿈꾸기 참 좋은 나이

늦었다고 생각하는 전업주부에게


내 꿈은 동화 작가다. 무려 마흔넷에 처음 생긴 꿈이다. 

20대엔 마흔이 넘으면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아이 키우고 살림 9단인 전업 주부와 20대 때부터 자신의 커리어를 확실하게 쌓은 안정된 직업인.


나는 지금 이 둘 중 어느 것도 아니다. 남들이 보면 아이 키우고 살림만 하는 전업 주부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살림 9단은커녕 3단도 안 되는 주부이고, 아이들은 세끼 밥만 겨우 차려 주는 엄마일 뿐이다. 

아이들은 이제 둘 다 10대의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내 손이 거의 필요하지 않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간섭하고 싶은 욕망이 미친 듯이 솟아오르지만, 내 말을 아이들은 좋게 받아들일 리 없으니 잔소리를 속으로 삭힌다.  




작년 초까지 아이들을 모아 집에서 독서와 글쓰기 지도를 했었다. 그때는 그 일을 아주 오래 하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사 갈 일이 생겨 버렸고, 더 갑자기 코로나가 창궐해 버렸다. 물론 이사를 가도, 코로나에도, 자신이 할 일을 열심히 이어가는 사람이 많다. 나는 낯선 지역,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가는 낯선 상황에 한동안 적응하지 못했다. 마음이 붕 떠 있는 것 같으면서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내 수입이 아주 없어진 것도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아이들이 전학을 오자마자 코로나로 학교를 못 가니 정서적인 결핍이 있을까도 걱정이 됐다. 집을 사지 못하고 이사를 왔더니, 미친 듯이 올라가는 집값에 잠이 안 오기도 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기나 한 걸까? 매일 답답한 마음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동화책에 눈이 갔고, 동화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다. 독서 논술을 지도하기 위해 읽던 느낌과는 확연히 달랐다. 의무감없이 읽는 책은 위로가 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동화를 한 편 써 보았다. 동화를 쓰면서 내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현실에서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동화에서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고양이와 대화를 할 수도 있고, 내 아이에게 하고 싶었던 잔소리를 마구 풀어놓을 수도 있었다. 나는 ‘창작’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마흔넷에 감히 ‘동화 작가’라는 꿈을 꾸게 된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꿈이 없었다. 모든 어린이들의 장래희망인 선생님도 되기 싫었고, 과학자도 되기 싫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생계에 떠밀려,하기 싫은 일을 꾹 참으며 돈을 벌어왔다. 내 꿈인 뭔지에 대해서 나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한 직장에서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 하루 종일 같은 자리에 앉아 일을 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지만, 정작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랐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전업 주부로만 9년을 지내다가 일을 시작한 것이 독서 지도였다. 책을 좋아했고, 집에서 내 아이를 키우며 할 수 있는 일이라 5년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두 아이는 어려서 내 손이 많이 필요했는데, 수업받는 아이들을 챙기느라 내 아이는 뒷전이 되었다. 누구누구의 엄마였던 나는, 못 가르친다는 소리 들을까 봐 참 애쓰며 살았다. 최선을 다해 애를 썼더니 다행히 소문이 좋게 났다. 학생들은 다달이 늘었지만, 내 행복감은 자꾸 줄어들었다. 나는 알려지는  상황이 불편했다. 마트에 가도, 카페에 가도 학부모를 만나게 되는 상황이  늘 신경 쓰이고 불편했다. 내 수업을 많은 사람이 알아주길 바라면서 나를 아무도 몰라주길 바랐다. 모순이지만 그랬다. 집은 학생들로 북적거리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늘 아는 척을 해 오는 상황에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완전 내향형 인간인데, 외향형으로 24시간 365일 사는 건 힘든 일이었다.      

성격에 맞지 않게 좁은 동네에서 자꾸 알려지는 게 불편하던 찰나, 남편이 아주 멀리 발령을 받은 것이다. 나는 조금의 미련도 없었다. 일을 빠른 속도로 정리하는 나 자신에게 내가 놀랄 정도였다. 내가 이 일을 이토록 싫어했던가? 나는 마치 그만 둘 날 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바로 이사를 가 버렸다.




그렇게 나는 지금 여기에 있고, 동화 작가를 꿈꾼다. 언제 이루게 될지는 모른다. 못 이룰 가능성도 많다. 하지만, 꿈을 꾼다는 자체가 행복하다. 나는 살림에 소질 없는 전업 주부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동화 작가라는 꿈이 있는 주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아이들이 학원 간 틈에 글을 쓰는 내가 기특하다. 마흔 넷이라는 나이가 고맙다.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마흔넷에 생겨서 좋다. 마흔넷 만큼 꿈꾸기 좋은 나이는 없는 것 같다.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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