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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Aug 15. 2021

<동화 에세이>김옥주 선생님 보세요

동화 '최기봉을 찾아라!'를 읽고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은 나에게 관심이 전혀 없었다. 2학년 때 선생님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3학년 때 선생님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이 모든 선생님이 모두 같은 선생님이다.     


 나는 공부를 아주 많이 잘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못하지도 않으면서 선생님의 지시에 순종적으로 따르는 조용한 학생이었었다. 친구들과 싸움을 한 적도 없고, 선생님께 반항 따위는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선생님 말이 법이어서 오줌보가 터질 것 같아도, 선생님이 화장실에 못 가게 하면 바지에 지리는 한이 있어도 못 가는 아이였다.   

   

 선생님은 1학년 때 우리 반 지연이(가명)에게 늘 심부름을 시켰다. 그리고 지연이는 선생님에게 허락을 구하지 않고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아이였다. 지연이는 기사 아저씨가 매일 등하교를 시켜주는 부유한 집 아이였고, 지연이 엄마는 어머니회다 뭐다 해서 자주 학교에 왔다. 나도 지연이처럼 선생님 심부름을 하는 아이가 되고 싶었다. 심부름을 시킬 때면 선생님은 “지연아”라고 성을 붙이지 않고 이름만 불렀는데, 나는 성을 뺀 이름만 불리는 지연이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3년을 내리 같은 담임이 된 나는 어린 마음에도 당황스럽고 실망스러웠다. 1년 동안 한 번도 다정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선생님이 3년을 연달아 같은 담임이 되는 것은 아이로서도 견디기 힘든 일이다. 선생님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친구들을 사귀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선생님은 싫었다.     


 1학년 때, 키가 크다는 이유 하나로 운동회 멀리뛰기 대표로 뽑혔다.  키만 컸지, 멀리 뛰려고 노력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던 나는 번번이 선생님을 실망하게 했다. 선생님의 실망스러운 표정을 살피는데 온 기력을 쏟은 나는 멀리 뛰기는커녕 걷는 방법도 까먹을 지경이었다. 선생님은 내가 얼마나 답답했던지 초등 1학년이었던 나의 등짝을 후려치며 ‘좀 잘 뛰어 봐라.’라고 말했다. 그때 등짝은 드라이아이스로 맞은 듯 서슬 퍼런 냉기로 얼얼했다.

선생님은 1년이 가도 몇 번 불러주지도 않는 내 이름을 항상 성과 함께 불렀다. 나는 늘 선생님이 지연이처럼 나에게도 이름으로만 불러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집이 부유하지도 않고, 먹고 사느라 바쁜 엄마가 학교에 올 리 없는 나에게 선생님은 이름만으로 불러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학년 때, 선생님의 관심을 받았을 때는 채변 봉투를 제출하지 않아서였다.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아이들을 화장실로 데려간 선생님은 어서 일을 해치우도록 종용했다. 재촉한다고 될 리 없는 그 일을 나는 끝끝내 성사시키지 못했고, 선생님의 야멸차고 서늘한 시선에 끝까지 참아보려 했던 눈물을 쏟고 말았다.

채변 봉투라니, 그때는 그랬다.      


3학년 때 선생님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나는 저학년 때까지 병약한 아이였다. 키만 컸지, 부러질 듯 몸은 약했고, 툭하면 아팠다. 1주일을 내리 결석하고 학교에 간 날, 나는 수업 중에 코피를 쏟고 말았다.

짝이 놀란 눈으로 “너 코피나.”

나는 짝이 장난을 치는 줄 알고, “에이, 거짓말 하지 마.”라며 책으로 눈을 돌렸는데, 책 위에 선홍색 빨간 코피가 뚝뚝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짝은 “선생님, 얘 코피 나요.”라고 즉각적이고도 다급한 목소리로 말해줬다. 선생님도 내가 피를 흘리는 모습에 수업을 중단하고 다가왔다. 선생님은 휴지로 코를 막고 한 손으로는 내 뒤통수를 잡아줬다. 나는 내 코에서 흐르고 있는 피보다 선생님이 내 머리를 잡은 손의 감촉이 더 선명했다. 코피가 멈추지 말고 계속 흘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 선생님이 내 머리를 만져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등에 서슬 퍼런 스매싱을 날리던 때와 달리 그때 선생님 손은 너무 따뜻했다.


선생님은 내 코를 막아주며 반 아이들에게 갑자기 나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OOO는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나와 같은 반이었다. 3년 동안 공부도 열심히 하고 착한 아이다. 이렇게 몸이 약한데도 공부를 열심히 는 OOO를 본받도록 하자 ”


선생님은 코피를 막으며 왜 그런 말씀을 했을까?

내가 불쌍해서 그랬을 가능성이 가장 큰데, 나는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선생님이 내가 3년 동안 같은 반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나는 선생님이 내가 3년 동안 같은 반일 줄 절대로 모를 거로 생각했다. 반이 6개나 있는데, 유일하게 3년 동안 같은 반인 나에게 늘 그렇게 냉정하게 대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가 엄마에게, 선생님이 3년 동안 내가 같은 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자랑했다.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고 어떤 마음이었을까? 겨우 서른 살이었던 엄마는 담임이 3년 만에 내 아이에게 처음으로 다정했던 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를 알아봐 주기를,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기를, 열 살인 나는 그렇게도 애타게 기다렸었다.      





<최기봉을 찾아라!>(글 김선정, 그림 이영림) 에도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선생님이 바라봐 주기를 바라는 아이가 있다. 인간 세탁기라 불리는 ‘공주리’, 그리고 ‘유보라 선생님’이다.      


최기봉 선생님의 아이들에 대해 냉랭한 태도를 보며 나의 1,2, 3학년 때 선생님이 생각났다. 유보라 선생님은 최기봉 선생님의 제자였고, 지금은 동료 교사가 되었다. 최기봉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주는 선생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도장’을 보낸다. 도장은 최기봉 선생님의 손에서 벗어나 예상과 다르게 여기저기에 찍히며 최기봉 선생님을 곤란하게 한다. 학교 벽에도, 교장 선생님 서류에도, 화장실에도 도장이 찍혀 있는데 그 범인은 선생님의 관심이 그리웠던 인간 세탁기 ‘공주리’다. 그렇게 있는 둥 없는 둥 존재감 없던 공주리가 선생님의 도장을 여기저기 찍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학생들에게 선생님의 말과 관심은 인생을 바꾸는 절대적 장치이다. 특히 유치원생과 저학년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하나님과 거의 동급이다. 그런 절대적인 힘을 가진 선생님이 한 번 불러주는 이름에 아이는 살아나고, 선생님이 휘두르는 차가운 눈빛에 아이는 죽는다.      

공주리는 머리를 너무 세게 묶어서 늘 눈이 좀 올라간 것처럼 보이는 아이, 목소리도 기억나지 않는 아이였다. 최기봉 선생님은 공주리가 걸레를 깨끗이 빨아 ‘인간 세탁기’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지도 몰랐다. (p.37)     


공주리는 빨갛게 찍힌 도장을 보며 설레었을 것이다. 도장을 찍은 사람을 찾는 화가 난 선생님의 모습이  관심처럼 느껴졌을 테니까. 공주리가 찍은 빨간 도장 위에 내가 쏟은 빨간 코피가 겹쳐졌다. 코피를 흘리면서 받는 선생님의 관심이 너무 좋아 계속 코피가 흐르기를 바라던 내 모습이 공주리와 다르지 않다.


3년 동안 나의 담임 선생님이었던 김옥주 선생님, 지금은 어디에 계실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원망은 없다. 그래도 내 코피를 닦아주셨으니까. 다만 선생님이 <최기봉을 찾아라!>를 읽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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