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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Oct 10. 2021

일본어 스터디 모임

일본어보다 사람들에게 더 많이 배운다.



일주일에 한 번 일본어 스터디 모임에 나간다.

이 모임은 올해 2월부터 시작한 모임으로 이제 9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일본인 한 명과 한국인 세 명, 모두 네 명이 일본 에세이를 읽으면서 공부한다. 책은 ‘일일시호일’이라는 일본 다도에 관한 책인데,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이고, 소설이 아닌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영화화된 책이기도 하다.

일본어 책 내용도 인생의 깨달음을 주는 매우 훌륭한 책이지만,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인간 책이 더 재미있다. 인간 책이라 함은 같이 공부하는 분들이다.


나를 제외한 세 명은 5년째 공부를 함께 해 왔다고 했다. 나는 올해 새로 충원된 세 명 중 한 명이었다. 나와 함께 시작한 두 명은 거의 한 두 달 만에 사정이 생겨 그만두게 되었다.

그렇게 새로운 사람도 들어오지 않고, 코로나 상황도 심각해져 인원이 늘지도 줄지도 않는 네 명인 상태로 계속 공부를 하고 있다.


같이 공부하는 일본인 선생님은 50대 후반, 한국인 두 분은 50대 중반, 60대 후반이다. 나는 40대 중반이다 보니 이 모임에 가면 젊다는 말을 매주 듣는다.

 “젊어서 뭐든 할 수 있는 나이야.” “젊어서 이런 옷도 잘 어울리네.” “젊어서 계산도 빨리하네.” “젊은데 어떻게 그런 생각까지 할 수 있어?”

40대 중반에 경로당에 나간 것도 아니고 일본어 스터디 모임에 나간 것인데 이렇게 젊다는 말을 많이 들을 줄은 몰랐다. 일본어 공부보다 젊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일본어 스터디 모임에 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젊은것은 내가 아니다. 같이 공부하는 60대의 송상과 50대 후반의 김상에 비하면 나는 늙은 것이다. 송상은 일어도 능통하지만 영어에 더 능통하며 15년째 매일 에어로빅을 하고 있다. 옷 입는 센스는 나보다 훨씬 젊다. 얼굴 주름은 내가 송상보다 몇 개 적을지 모르겠지만, 생각은 내가 훨씬 늙었다.


김상은 환경문제를 언제나 적극적으로 고민하며 카페에 오면서도 늘 텀블러에 차를 담아 마신다. 여성 문제에도 늘 고민이 많다. 역시 일본어 외에도 영어, 중국어까지 스터디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생물학적 나이는 내가 가장 적지만, 정신적인 에너지는 이 두 사람을 따라가지 못한다.

매주 '스고이 데스네(대단해요)'라는 말만 남발하다 오는 것 같다.


이 모임에 나가기 전 나는 무기력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40대 중반에 들어선 나이에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직업도 없는 내가 주부의 일조차 제대로 잘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다가 우연히 일본어 스터디 모임의 인원을 충원한다는 글을 보게 됐고, 덜컥 신청해서 나가게 되었다.


내가 일본어를 공부한 것은 대학 때까지였고, 일본어를 손 놓고 있었던 것이 벌써 20년을 넘기고 있었다. 일본어를 거의 잊어버린 상태인 것은 분명했다. 일본어 능력 1급~2급 정도의 어느 정도 일본어가 능통한 사람을 모집한다는 글이었지만, 나는 밖에 나가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모임을 신청했다.

그때 내 상황은 거의 1년을 아무도 만나지 않고, 코로나로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하고만 지내던 시기였다. 어디든 나가서 누구하고 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불쑥 고개를 들이밀곤 했다.


8개월 동안 매주 금요일이면 카페에 모여 우리는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일본어로 마음껏 떠든다. 가족 이야기, 친구 이야기, 요리하는 방법, 심지어 시댁 이야기도 일본어로 이야기한다. 서툰 언어로 표현해도 어찌나 잘 통하는지 모른다. 언어 자체의 능숙함보다 대화의 내용에 집중하니, 완벽하게 외국어를 구사하지 않고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대학 때 이런 공부하는 재미를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마흔 넘어 겨우 이것저것 배우는 재미를 알았다. 배움 자체도 재미있지만, 배우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배운다. 나는 그들을 '인간 책'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존중하는 마음만 갖는다면 나이의 벽도, 언어의 벽도 모두 허물 수 있는 것을 '인간 책'을 통해서 배웠다.  


일본어 스터디 모임에서 공부하고 있는 일본어 책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은 ‘매일매일 좋은 날’이라는 뜻이다. 자신의 허물은 크게 보고, 남의 허물은 너무 큰데도 작게 덮어주시는 '인간 책'인 일본어 스터디 모임 회원들 덕분에 일본어 스터디가 있는 날은 ‘매일매일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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