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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Apr 17. 2021

<딸에게 고백한 날>

빵점을 받아도 세상이 무너지는 일은 없다





중학교 2학년인 딸이 공부 때문에 힘들다고 했다. 공부를 해도 시험 점수가 잘 안 나올까 봐 항상 불안하단다. 학창 시절 시험 점수는 곧 자신이며 인생 점수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딸에게 그것이 아니라는 말을 해 주고 싶었다. 점수는 점수일 뿐 미래의 행복과는 별개라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었다.

나의 고백은 거기서 출발했다.     




때는 1996년,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중간고사 때였다.

나는 수학 시험에서 빵점을 받았다. 백점 보다 힘들다는 빵점을, 그것도 고3 때 받은 것이다. 일찍이 수포자이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대학을 포기한 고등학생은 아니었다. 수학 빼고 다른 과목은 상위권에 있는 성적이었고, 공부를 잘하고 싶었고 좋은 대학에 가기를 꿈꾸며 선생님 말씀을 최대한 잘 들으려고 노력하는 나름 성실한 학생이었다. 평범하기 그지없던 학생인 내가 비범하기 짝이 없는 점수인 빵점을 받았다. 찍은 문제는 답을 피해 갔고, 풀었다고 생각한 문제는 모조리 틀리게 풀었던 것이다. 차라리 아예 풀지 말고 그냥 같은 번호로 쭉 찍었더라면 빵점은 안 맞았을 텐데, 수포자인 주제에 풀려고 노력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고3 때 수학을 빵점 받았으니, 그때 당시 나는 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점수가 안 나왔다는 좌절감보다 빵점이라는 점수가 주는 치욕스러움을 더 견디기 힘들었다. 친구들을 쳐다보기도 부끄러웠다. 다들 얼마나 웃고 싶을까. 비웃고 싶을 텐데 내 앞에서 꾹 참고 있는 것 같아서 나는 쉬는 시간마다 학교에서도 인적이 드문 건물 구석탱이에 숨어있었다. 거기서 처량 맞게 울었다. 세상은 내 편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학교 옥상으로 올라가 뛰어내릴까도 잠시 생각했다. 내가 죽고 나면 사람들은 빵점때문에 죽었다고 할 것이고, 나의 빵점은 영원한 전설로 남을 것이다. 그건 내가 절대로 원치 않는 일이다. 나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내 빵점이 얼른 잊혀지기를 바랐다.

빵점으로 내 인생은 도저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 구제 불능이 된 것 같았다. 대학도 못 갈 것이 분명하고,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실망시킬 것도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생각할수록 막막했다.    


  




딸에게 여기까지 이야기했더니 배를 잡고 웃는다. 25년 만에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밝히는 나의 흑역사에 딸은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다.

“엄마, 진짜야? 어떻게 빵점을 맞을 수 있어? 엄마 나 위로하려고 지어낸 이야기 아니야?”

딸은 몇 번이고 진짜냐고 물었다. 딸이 나의 빵점 흑역사를 의심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는 지금도 책 읽는 것을 즐겨하며 아이들 앞에서 유식한 척 맨날 잘난 척을 해댔기 때문이다. 고3 때 수학 빵점을 맞고도 대학도 들어갔다. 일류대는 아니었지만, 내가 사는 지역에서 가장 좋은 대학에 합격했다. 어떻게 고등학교 때 수학을 빵점 맞고도 대학을 가고, 멀쩡하게 살 수 있는지 딸은 신기해했다



그 이유는 딱 한 가지다.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을 쉽게 포기 할 수는 없었다.

빵점을 맞고 크게 좌절했고, 한동안 우울했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마법의 약으로 차츰 빵점의 충격에서 벗어났다. 친구들은  내 빵점에 관심도 없었다는 듯 아무렇지않게 나를 대했다. 다들 자기 점수 걱정하느라 처음부터 나의 빵점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시 친구들과 다시 도시락을 까먹고, 좋아하는 연예인 이야기를 하며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공부도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했다. 수학은 여전히 포기 과목이었지만, 다른 과목들은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평소에 독서를 즐겨했던 덕에 수능 언어영역은 상위 1% 이내에 들었다. 결국 내신 점수가 전혀 들어가지 않고 수능점수만 보는 전형으로 원하는 대학에 무사히 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 해. 빵점 맞아도 엄마 잘 살고 있잖아. 전혀 빵점 맞은 사람처럼 안 보이지? 점수가 중요한 게 아니고 열심히 하는 그 자체가 중요한 거야.”

“엄마, 엄마 이야기 들으니까 마음이 너무 편해진다. 진짜 빵점 맞은 거 맞지?”

딸은 몇 번이나 내 빵점을 확인했다. 25년이나 된 일이지만, 아직도 따끔따끔한 기억인데, 딸은 내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엄마, 그때 옥상에서 안 뛰어내리고 나 낳아줘서 정말 고마워.”

딸은 나의 빵점 스토리에 크게 감명받은 듯했다. 빵점을 받고 학교 한 구석에서 울고 있던 고 3의 나는, 빵점 이야기로 내 미래의 딸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때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조금은 덜 슬펐을 텐데...

빵점 맞은 보람이 있었다. 중학생 딸이 웃었고, 용기를 얻었으니 말이다.   


고3 때 빵점을 맞은 경험이 나에게 준 것은 어떤 순간도 지나가기 마련이며, 지나간 후에는 인생의 보약을 먹은 듯이 힘들 때 나를 세워주는 힘이 된다는 사실이다. ‘고 3 때 수학 빵점 맞은 것도 이겨냈는데, 이 정도쯤이야’라는 식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성적이 잘 안 나와도 별로 걱정을 안 하게 된다는 이점이 있다. ‘나는 빵점도 맞아봤는데, 이 정도면 잘한 거지’라고 생각하며 너그럽게 넘어가게 된다. 당장에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일도 결국에는 다 지나가게 된다는 이치를 고등학교 때 겪었던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다.      


딸이 힘겨운 10대 시절을 보내고 있다. 부모로서 옆에서 지켜 보기에 안쓰럽다. 딸이 인생이라는 길을 가는 동안 넘어져도 잠깐만 아파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기를, 걸어갈 수 없을 정도로 다쳤을 때는 잠시 주저앉아 쉬어도 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빵점을 맞아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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