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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Apr 14. 2021

<미용실에서>

싸구려지만, 싸구려 취급을 받는 건 싫어

나는 단골 미용실이 없다. 미용실은 무조건 싸면 좋다는 주의다. 20만원 짜리 파마와 5만원짜리 파마의 차이를 도통 모르겠다. 20만원 짜리가 아니라 100만짜리 파마를 해도 내가 김태희가 될 리는 없다.

아무리 비싼 미용실에서 머리를 해도 나는 김태희가 되기는 커녕 머리를 다 하고 거울을 볼때면

‘이게 과연 20만원짜리 머리인 줄 누가 알아 줄 것인가?’하는 의문이 든다. 원판불변의 법칙은 미용실에서도 냉혹하게 적용된다.  


   

내 헤어스타일은 대체로 짧은 커트다. 커트 머리를 관리하려면 미용실을 꽤 자주 가야한다. 언제나 돈이 부족한 나는 아주 싼 미용실을 열심히 찾아다닌다.      

<H 미용실>에 들어간 것은 우연은 아니다. H 미용실 앞에 붙은 현수막을 오래전부터 눈여겨 보고 있었다.

‘여자 커트 만원.’


내가 자주 가는 미용실은 만 오천원이다. 만 오천 원이지만,  서비스는 2만원 이상으로 훌륭하다. 미용사는 초보인 듯 서툴지만, 성의 있는 서비스에 언제나 감동한다. 커트가 조금 이상한 것은 내 얼굴 탓도 있기때문에 나는 불만 없이 만 오천 원 미용실을 이용했다. 만 오천 원이 동네 최저가라고 생각했는데, 만원짜리가 나타났다. 구미가 당겼다.

     

어느날 지저분한 머리를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만 오천원 미용실을 찾아 나선 날이었다. 그날은 날씨가 아주 추웠다. 꽃샘추위를 무시하고 얇은 옷을 입고 나왔다가 어깨를 움츠리며 덜덜 떨며 걸었다. 만 오천원 미용실은 집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나는 추위를 견디며 걷다가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H 미용실 앞에서 나도 모르게 발길이 멈췄다. 15분이나 더 걸어야 하는 만 오천원 미용실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나는 H 미용실앞에 적힌 ‘커트 만 원’이라는 현수막을  다시 읽어 보았다.


‘그래, 머리는 어차피 또 자라니까. 이상하면 얼마나 이상해지겠어. 한 번 맡겨보지 뭐.’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감 때문이었는지 주문같은 다짐을 하며 미용실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여기가 커트가 만원인 미용실인가요?”라고 확인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가격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듯이 당당한 보폭으로 들어갔다.

미용실 원장님은 반색하며 “어서 오세요. 뭐 하실거예요?”라고 물으셨다.

“커트 하려구요.”

“네, 여기 앉으세요.” 원장님은 가운데 의자로 나를 안내했다. 의자에 놓인 방석이 조금 지저분했지만, 그냥 앉았다. 전기방석이었는데, 앉으니 엉덩이가 따뜻했다. 만원 미용실의 엉덩이 서비스에 감탄했다. 따뜻한 엉덩이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벌써 오천 원치의 서비스는 받은 느낌이었다. 머리를 이상하게 잘라도 너그럽게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원장님은 가위를 들고 내게로 다가와

“언니, 어떤 머리 할거야?” 라고 물으셨다. 원장님 나이는 50대 후반으로 보였지만, 40대인 나에게 언니라는 호칭을 거리낌 없이 사용했고, 반말도 어색함이 없었다. 이미 따뜻한 엉덩이로 오천 원치의 서비스를 받았다고 생각한 터라 원장님의 말투는 크게 거슬리지 않았다.

“지금 스타일로 깔끔하게 정리해 주세요. 두 달 정도 된 머리예요.”

“음, 보자.... 언니 뒷 머리 커트 라인이 너무 지저분하다. 왜 이렇게 잘랐을까?”

지저분하니까 미용실에 온 것이고, 내가 자른 것도 아닌 머리에 대고 왜 이렇게 잘랐을지 궁금해하는 원장님에게 대꾸할 말이 없었다.



“언니, 언니는 목 뒤쪽에 제비초리가 두 개나 있네. 나 제비초리 두 개 있는 사람 처음 봐.”

나도 내 목 뒤에 제비초리가 있다는 말도 처음 들었다. 그것도 두 개나 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었다. 나도 몰랐던 내 신체의 비밀에 놀랄 틈도 없이, H미용실 원장님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언니, 이렇게 제비초리 두 개가 정수리에 있었으면 결혼 두 번 할 팔자인 거 알지? 다행이다 목 뒤에 있어서” 정수리에 가마가 두 개 있으면 결혼 두 번 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제비초리가 정수리에 갖다 붙을 수 있다는 말은 처음 들어보았다. 원장님은 가마와 제비초리를 헷갈리시는 것 같았지만 그냥 듣고만 있었다.



“언니, 머리가 너무 직모라 드라이 파마해야 할 것 같은데, 머리를 아무리 잘 잘라도 이렇게 머리가 뻗친 머리면 스타일이 안 나와.”

원장님은 뜬금없이 내 머리를 ‘뻗친 머리’라고 명명하며 드라이 파마를 권했다. 내 머리카락은 곱슬머리로 파마를 안해도 드라이 파마를 한 것 같다는 말을 미장원에 갈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들으며 살고 있다. 뻗친 머리라 드라이 파마가 필수라는 원장님의 진단은 당황스러웠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요. 다음에 할게요.” 라며 어물쩡 넘어가려고 했다.

“금방하는데. 오늘 같이 하지.”

그쯤에서 그냥 일어서야 했을까? 커트를 하기 위해 목에 보자기를 이미 두르고 있었고, 나는 이미 엉덩이 방석에 몸이 노근하게 녹아 있었다. 빠져나가기엔 이미 늦은 것이다.

“오늘은 좀 바빠서요. 그냥 커트만 해 주세요.” 라고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원장님은 그 이후로 칼로 머리를 섬벅섬벅 잘라 들어갔다.

한 번씩 “에휴” 하는 한숨과

“대책이 안 선다. 정말”

“언니같이 머리 정리 잘 못하는 사람은 드라이 파마를 해줘야 하는데.”와 같은 탄식을 내뱉으면서 칼을 든 원장님의 손은 계속 움직였다.

원장님은 단돈 만원에 대책 안 서는 뻗친 머리를 맡기면서도 끝까지 드라이 파마를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는 싸구려 고객을 맡게 된 자신의 불운에 절망 하는 듯 했다.   

  

이제 머리는 어떻게 깎이든 상관없었다. 어서 이 시간이 지나고, 이 미용실 밖으로 나갈 시간만을 기다렸다. 따뜻했던 엉덩이 방석은 어느새 뜨겁다 못해 따갑게 느껴졌고, 부뚜막에 올라간 어린 송아지처럼 나는 안절부절 못했다. 바깥의 시원한 바람을 쐬고 싶었다.


굳은 표정의 원장님은 가위질보다는 칼질을 많이 했다. 그 모습이 화가 난 채 생선을 다듬는 생선 장수처럼 보였다. 어느새 칼질을 멈춘 원장님은 스펀지로 내 목 뒷 부분을 무심히 탁탁 털며 “다 됐어. 근데 언니 머리카락 진짜 많이 빠진다. 머리 볼륨이 너무 없네.” 라며 마지막까지 한숨 섞인 독설을 멈추지 않았다.

탈모에 대한 경고를 마지막으로 머리 커트는 끝났다.      


미용실을 나와 다시 현수막을 봤다.

 ‘여자 커트 만원’.

미용실에 들어가기 전에는 싸다고 생각한 가격이었다. 나와서 다시 보니 소름끼치게 정직한 가격이라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원장님이 만원에 좀 더 품위 있는 서비스를 베풀었다면 어땠을까? 우리 가족 모두를 단골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며, 주변 지인에게 소개도 시켜줬을 것이다. 나는 비록 만 원짜리 커트 손님에 불과하지만, 그 이후에 얻게 될 이득은 백만 원, 혹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렇게 된다면 H 미용실 원장님은 만원 짜리 원장님이 아니라 백 만원 짜리 원장님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의 값어치를 몰라준 원장님의 근시안적인 서비스 정신을 마구 안타까워했다. 나를 홀대해서 H미용실 원장님이 큰 돈을 벌 기회를 놓치기라도 한 듯이 마음속으로 원장님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값이 싸다고 들어간 미용실에서 나는 싸구려 손님 취급을 당해서 화가 났다. 싸구려이면서 싸구려 취급을 당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머리가 너무 짧게 잘린 것 같다. 찬 바람이 뒷 목을 스치자 소름이 돋았다.  빨리 집에 들어가서 머리를 감고 싶었다. 머리카락과 내 몸에 붙은 싸구려 흔적을 박박 지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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