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계단 끝에는 뭐가 있을까
헬린이의 헬스장 사용기
매일 가려고 헬스장에 등록했지만, 많이 가면 일주일에 세 번 간다. 암선고를 받고부터 헬스장에 다니기 시작, 중간에 수술하고 한 달 반을 쉬었으니 대략 6개월을 다닌 셈이다.
처음 헬스를 시작한 건 집 앞에 헬스장이 있고, 할인 행사를 하고 있었고, 딱히 하고 싶은 다른 운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암'이라는 병에 걸렸는데 살던 대로 아무런 운동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었다. 수영을 좋아하긴 하지만, 수영장이 멀리 있어서 시간 할애에 부담을 느꼈다. 필라테스는 나에게 너무나 고강도 운동이라 역시나 부담스러웠다.
헬스장에 가서 내가 하고 싶은 만큼 적당히 땀만 빼고 목욕이나 하고 오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지금도 남이 봤을 때는 저래서 땀이 나기는 날까 싶을 정도로 가벼운 운동을 하는 중이지만, 나는 나름 만족스럽게 헬스장을 다니고 있다. 무거운 기구를 들면서 근육을 만들 엄두는 아직 못 내고 있지만, '끙차끙차'소리를 내며 근육 만들기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내가 헬스장 기구를 탐색하다 발견한 재미난 기구가 있는데, 바로 '천국의 계단'이다. '천국의 계단'을 들었을 때 최지우, 권상우, 김태희가 나왔던 드라마가 먼저 떠오른다면 당신은 최소 40대 이상이다. 나는 드라마 이름을 차용한 헬스기구라 해서 재미있고 만만한 것으로 봤다.
러닝 머신만 매일 20분씩 하던 나는 천국의 계단에 호기심을 느꼈다. 천국의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은 매우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데, 고개를 푹 숙이고 손잡이에 거의 매달리다시피 겨우 발을 떼곤 했다. 운동 기구 자체는 매우 단순하고 하나도 힘들어 보이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고통스러워 보였다.
매일 러닝머신만 하다 가려니 돈이 아깝기도 한데, 또 다른 기구를 하자니 작동법을 모르겠고, 트레이너에게 물어보자니 PT를 강요당할 것만 같았다. 나는 헬스를 다니기 시작하고 석 달이 지난 무렵 처음으로 러닝머신 옆의 천국의 계단에 올라가 봤다.
기구 손잡이는 자전거를 닮았고, 손잡이 아래로 계단 4개가 연결되어 올라갈 수 있도록 돼 있다. 숫자를 올리면 계단이 움직이는 속도를 더 올릴 수 있다. 멀리서 다른 사람이 천국의 계단을 하는 걸 봤을 때는 참 느릿느릿 올라가는 것 같았다.
나는 처음에 5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어 숫자를 올리고 계단을 밟기 시작했다. 5로 시작한 지 1분도 안되어 나는 내가 얼마나 오만방자했는지를 깨달았다. 숫자를 급히 1로 낮추고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목표는 10분.
'천국의 계단'위에서는 1분이라는 시간도 영겁처럼 길었다. 도대체 이 기구 이름은 왜 천국의 계단인가. 시간의 체감이 저 세상이라 천국의 계단인 건가. 헉헉 대는 숨을 몰아쉬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구 만든 사람이 운동하는 사람을 놀리려고 만든 이름인 것만 같았다.
3분을 겨우 채우고 천국의 계단에서 내려오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이 방망질 쳤다. 적당하게 땀만 빼려고 했던 나의 운동 목표는 천국의 계단 덕분에 3분 만에 초과 달성이었다.
다음날부터 매번 천국의 계단에 올랐다. 이 기구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기구인지 맛을 봤기 때문에 긴장된 마음으로 계단을 천천히 오르며 겨우 3분을 채웠다.
그리고 천국의 계단을 한지, 지금 3개월째.
15분을 버틸 수 있게 되었다. 엄청난 발전이다.
'지옥의 형벌'이라 지으면 딱 맞을 것 같은 이름을 가진 기구에서 15분 만에 내려오면 천국에 온 기분을 잠시 느낀다. 뭔가 해냈다는 느낌과 조금씩 향상되고 있는 체력이 실감 난다. 뻐근한 허벅지로 겨우 걸아가 본 전신 거울에, 땀에 젖어 상기된 아줌마가 웃고 있다. 정말 천국이라도 다녀온 듯한 표정이다.
'천국의 계단', 헬스 기구 이름 한 번 잘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