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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May 17. 2021

마흔넷에 꾸는 동화작가라는 꿈

내가 나에게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쓰는 글


나이 마흔넷에 꿈이 생겼다. 동화 작가가 되고 싶어 졌다. 나를 아는 누군가가 본다면 '갑자기?'라고 의아해할 것이 분명하다. 당황스러워할 나의 지인들에게 내 꿈에 대한 변론을 하자면,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했고, 글쓰기 상도 꽤 많이 받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흔하디 흔한 대답에 고개를 더욱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나조차도 이런 꿈을 꾸는 게 가당치 않아 보여서 자꾸 변명을 늘어놓게 된다.




글을 써서 돈을 벌려면 대단히 뛰어난 작가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뛰어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았다. 돈에 구애받지 않고 글을 쓸 만큼 나는 부유하지 않았다. 졸업해서 빨리 취직해서 돈을 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20대는 작가의 꿈을 꿀 여유가 없었다. 부모님한테 도움도 되고 싶었고, 결혼 자금도 모아야했다. 글을 써서 돈을 번다는 생각은 가당치도 않았다.

30대는 임신, 출산, 유산, 육아로 시간을 보냈고, 이제 여유가 생겼다. 나이 마흔넷, 이제야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도 동화 작가.


집에서 아이들을 모아 독서와 글쓰기 지도를 5년간 했다. 글쓰기를 지도하면서도 작가가 되고 싶거나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보지 못했다. 독서 지도를 위해 많은 동화를 읽으면서 동화의 세계가 어린이들을 겨냥한 얄팍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른의 마음에도 울림을 주는 깊은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독서 지도의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그래도 나는 직접 동화를 써 볼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고, 여러 가지 글을 혼자서 끄적거려 보는 게 다였다.   

   

그런데 남편의 발령으로 이사를 하면서 독서 지도를 그만두게 되었다. 바쁘게 일을 하다가 그만두니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게 되었다. 다시 일을 시작하려니 코로나로 우리 집 아이들 둘이 학교를 못 가는 상황이라 집에서 일을 시작하기도 여의치 않았다. 시간이 많으니 글을 쓰는 곳을 기웃거리게 됐고, 그러다가 브런치도 시작하게 됐다. 직접 선생님을 만나서 글쓰기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하는 동화 교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화 교실을 등록하면서도 내가 동화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거의 없었다. 호기심 반, 끌림 반으로 등록한 그곳에서 숙제로 30매짜리 단편 동화를 한 편 쓰게 되었다. 동화 교실에 등록하자마자 받아 든 동화 쓰기 숙제는 참 난감했다.


‘내가 동화를 어떻게 쓴단 말인가?’

기본적인 방법조차 가르쳐 주지 않고 다짜고짜 쓰라고 하는 선생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숙제니까, 써야 하니까 썼다. 그런데 써 보니 정말 써졌다. 쓰게 될 줄 몰랐는데, 이야기를 상상해서 만들어내는 과정이 재미있기까지 했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는 현실인데, 글 속에서는 내가 주인이었다. 내 마음대로 인물을 예쁘게도 했다가 못생기게도 만드는 하는 과정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물론 그것은 착각이며 착시 현상일 뿐 제삼자가 봤을 때 내 글은 읽는 데 시간 낭비일 뿐인 동화였다. 그래도 합평 시간에 선생님과 같은 반 글벗들은 ‘잘 썼다.’ 하며 칭찬 일색의 입에 발린 말들을 내게 해 주었다. 앞에서 무안을 줄 수 없어서 좋은 말을 해 주는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과분한 칭찬의 부작용으로 정말 잘 썼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나는 용기백배해져서 처음으로 써 본 동화를 공모전에 보냈다.


결과는 당연히 탈락이었다. 탈락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처음 써 본 동화가 덜컥 당선되는 드라마 같은 일이 내게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그런 일은 현실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탈락이 되고 나서 동화를 더 쓰고 싶어 졌고, 동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더 또렷해졌다. 지금까지 내 꿈은 어떤 조그만 걸림돌이라도 걸리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넘어져 일어날 생각을 못 했는데, 동화 작가라는 꿈은 계속 꾸고 싶어 졌다. 서른 번 정도는 탈락해도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돟화 작가가 되기에 마흔넷의 나이는 좀 많게 느껴진다. 나이가 10년 더 어렸다면 더 좋았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서른넷의 나는 다섯 살, 세 살짜리 아이를 정신없이 키우고 있을 때였고, 동화를 읽지도 않을 때였다.   

   

이제야 나에게 때가 온 것이다. '동화 작가'라는 꿈을 꿀 수 있는 늦지도 빠르지도 않은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글을 써서 돈을 당장 벌지 않아도 입에 풀칠은 해 줄 남편이 있고, 아이들은 초등학생, 중학생이 되었다. 나는 5년간 독서 지도를 하며 동화를 천 권도 넘게 읽었다. 내 아이들은 매일 동화 소재를 툭툭 던져 준다. 그저 나는 아이들이 주는 동화 소재를 글로 엮는 일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만하면 동화 작가가 되기 위한 완벽한 때가 아닌가 싶다.


좀 늦게 등단하게 되더라도 80살이 될 때까지 동화를 쓰면 거의 30년 이상은 글을 쓸 수 있다. 좀 더 젊고 재능이 있어서 빨리 자리를 잡는 동화 작가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지금도 나쁘지 않다. 쉰넷이 아니고, 예순넷이 아니라 마흔넷이니까 말이다.


실패해서 외적 성장은 보이지 않더라도, 내적인 성장은 한 것이니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다.

이 말은 배우 유태오의 부인이며, 사진작가인 니키 리가 한 말인데, 정말 멋진 말인 것 같다. 열 살이나 어린 미남을 차지할 자격이 있는 훌륭한 여성이다. 동화 작가가 되고 싶은 마흔넷의 나에게도 딱 어울리는 격려이다. 포기하지 않고, 동화 작가가 되는 길을 간다면 최소한 내적 성장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포기하지는 말자고 나에게 다짐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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