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 이동이 결정되고 새로운 팀으로 옮기기까지, 나는 여전히 타조부장과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어야 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공기가 흘렀다. 그건 외부의 변화가 아니라, 내 안에서 일어난 아주 작지만 단단한 변화 때문이었다. 나는 더 이상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는 피해자가 아니었다.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싸움을 막 시작한, 서툴지만 결연한 전사였다.
이 장은 그 치열했던 시간 동안 내가 거두었던, 남들이 보기엔 별것 아닐지 몰라도 나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했던 ‘아주 작은 승리’들에 대한 기록이다.
첫 번째 승리: 침묵이라는 이름의 방패
새로운 팀 발령을 기다리던 어느 날, 타조부장은 또다시 나를 호출했다. 이전 같았으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겠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담담했다. 그녀는 서류 하나를 내 앞에 던지며, 늘 그랬듯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김 대리, 이걸 보고서라고 쓴 거야?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날카로운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동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모니터에 고개를 박았다. 예전의 나라면, 나는 분명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어쩔 줄 몰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분노도, 두려움도, 억울함도 담지 않은, 텅 빈 눈으로.
나의 침묵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그녀였다. 그녀는 몇 마디 더 쏘아붙이다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답답하긴…” 하고 혀를 차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 순간, 나는 짜릿한 승리감을 느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침묵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침묵은 그 어떤 변명이나 저항보다 강력한 방패가 되어, 그녀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녀는 나의 반응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었겠지만, 내가 그 먹이를 주지 않자 스스로 무너져 내린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소음에 정면으로 맞서, 소음의 볼륨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두 번째 승리: “그건 제 업무가 아닌 것 같습니다”
부서 이동을 며칠 앞두고, 다른 팀의 한 선배가 나에게 다가와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김 대리, 미안한데 이것 좀 도와줄 수 있을까? 네가 잘 알잖아.” 예전의 나라면, 나는 또 거절하지 못하고 밤을 새워서라도 그 일을 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만만한 김 대리’가 아니었다.
나는 잠시 서류를 내려다본 후, 최대한 부드럽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 죄송하지만 지금 제 업무가 많아서요. 그리고 이 부분은 제가 담당하는 업무가 아닌 것 같습니다.”
선배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아, 그래? 알았어…” 하고는 멋쩍게 서류를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거절. 그 간단한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던가.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지킬 권리는 나에게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이제야 깨닫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 것이다.
세 번째 승리: 나를 위한 저녁 식사
부서 이동이 확정된 후, 나는 나를 위한 작은 축하 파티를 열기로 했다. 퇴근길에 평소 좋아하던 레스토랑에 들러, 가장 비싼 파스타와 와인 한 잔을 주문했다. 혼자만의 저녁 식사는 조금 어색했지만, 이내 편안해졌다.
창밖의 사람들을 구경하며, 나는 지난 몇 달간의 나를 돌아보았다. 위태롭게 흔들렸지만, 끝내 부서지지는 않았던 나. 도망치는 대신, 나를 지키는 다른 길을 찾아낸 나. 그 모든 과정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날의 파스타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다. 그건 단순히 음식을 먹는 행위가 아니었다. 고통의 시간을 통과해 온 나 자신을 위로하고, 앞으로의 나를 응원하는 성스러운 의식이었다. 나는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법을, 아주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이 작은 승리들은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나는 더 이상 무력한 존재가 아니었다. 내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갈 힘이, 내 안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비록 완전한 평화가 찾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이제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내 손에는 ‘승리’라는 이름의 작은 촛불이 들려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