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 이동 신청서를 낸 그날, 나는 처음으로 아주 깊은 잠을 잤다. 오랫동안 나를 짓누르던 거대한 바위 하나를 겨우 밀어낸 기분이었다. 물론 현실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았다. 부서 이동 절차는 생각보다 더뎠고, 나는 여전히 소음의 진원지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분명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바로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나를 구출해내는, 아주 느리고 서툰 첫걸음이었다.
‘과제의 분리’는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막상 실천하려고 하니 쉽지 않았다. 그것은 수십 년간 내 발목에 채워져 있던 오래된 족쇄와도 같았다. 누군가 나를 향해 쓴소리를 하면, 반사적으로 ‘내게 무슨 문제가 있나?’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습관. 칭찬을 받으면 어쩔 줄 몰라 하며 ‘아닙니다, 별것도 아닌데요’라고 손사래 치는 습관. 그 모든 것이 타인의 평가에 내 기분과 가치를 저당 잡히는 행동이었다.
첫 번째 연습 상대는 역시나 타조부장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사소한 트집을 잡으며 나를 괴롭혔다. 예전 같았으면 그녀의 말 한마디에 심장이 쿵 내려앉고, 하루 종일 그 말을 곱씹으며 괴로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건 저 사람의 과제이지, 나의 과제가 아니다. 저 감정은 저 사람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그녀가 보고서를 집어 던지듯 내 책상에 놓으며 “이따위로 할 거면 회사 왜 다녀?”라고 쏘아붙였을 때, 순간 가슴에 날카로운 통증이 스쳤지만, 나는 곧바로 속으로 되뇌었다. ‘아니, 이건 당신의 분노조절 문제이지, 내 업무 능력의 문제가 아니야.’ 물론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죄송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직은 그 정도가 최선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더 이상 그녀의 감정 쓰레기를 내 안에 담아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녀의 비난은 내 마음에 닿기 전에, ‘이건 내 과제가 아님’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동료들의 시선에서도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그들의 침묵과 방관에 깊은 상처를 받았었다. ‘왜 아무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을까?’, ‘나만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걸까?’하는 생각에 외로웠다. 하지만 ‘과제의 분리’라는 렌즈를 끼고 보니, 그들의 행동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침묵은 나를 향한 비난의 화살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그들 자신을 향한 두려움의 방패였다. 그 사실을 깨닫자, 굳어 있던 원망이 눈 녹듯 스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그건 그들의 생존 방식이었고, 그들 자신의 과제였다. 나는 더 이상 그들에게 이해나 위로를 구걸하지 않기로 했다. 모두에게 이해받을 필요도, 사랑받을 필요도 없었다. 내가 지켜야 할 것은 그들의 시선 속의 ‘나’가 아니라, 그냥 ‘나 자신’이면 충분했다.
어느 날, 동료 몇몇이 또 나를 빼고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것을 보았다. 예전 같았으면 서운함에 속이 상했겠지만, 그날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했다.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진 것이 반가웠다. 나는 회사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사무실의 형광등 불빛 아래서는 느낄 수 없었던 빵의 고소함과 햇살의 따스함이 온몸으로 퍼졌다. 오랜만에 올려다본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파랬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 자신과 더 깊이 연결되는 경험이라는 것을.
물론 이 과정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날은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 사소한 말 한마디에 무너지고 밤새 이불을 차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번 맛본 자유의 감각은, 나를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에서 나를 구출하는 일. 그것은 세상의 모든 소음으로부터 내 마음을 지키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었다. 나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의 평가에 따라 울고 웃지 않았다. 나의 가치는 내가 정하는 것이고, 내 기분은 내가 책임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의 열쇠를 내 손에 쥐고 아주 조금씩, 나 자신의 주인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