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첫 번째 균열, 공황이라는 신호

by 달글이


소음은 멈추지 않았다. 회색빛 소음은 이제 내 귀가 아닌, 내 혈관을 타고 흐르는 피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나는 그 소음의 포로였다. 버티고, 버티고, 또 버텼다. 내가 버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단할 것만 같던 내 세상에도, 결국 첫 번째 균열이 찾아왔다. 그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먼저 보내온 절박한 비명이었다.


그날은 유독 사소한 일들이 나를 괴롭혔다. 서류를 정리하다가 무언가를 자를 일이 있었다. 내가 가위질을 하는 모습을 빤히 보던 타조부장이 혀를 차며 말했다. “어쩜 저렇게 기분 나쁘게 가위질을 할까?” 순간 내 손에 들린 가위가 세상에서 가장 흉측한 물건처럼 느껴졌다. 주변의 모든 시선이 내 손에 꽂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도망쳤다.


세면대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낯선 여자가, 마치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타인인 양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텅 빈 눈, 파르르 떨리는 입술. 저 사람이 정말 나라고? 그 낯선 얼굴을 보는 순간, 참았던 무언가가 울컥 터져 나왔다. ‘내가 왜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 억울함과 서러움이 뒤섞여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건 그냥 눈물이 아니었다. 내 안에서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외치는 신호였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나서야, 나는 겨우 텅 빈 사무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진짜 균열은 며칠 뒤, 모두가 모인 회의 시간에 찾아왔다. 중요한 보고가 오가는 시간, 나는 평소처럼 긴장한 채로 앉아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발끝에서부터 차가운 기운이 역류하듯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가슴을 뚫고 튀어나올 것 같았다. 숨을 쉬려고 애썼지만, 보이지 않는 손이 내 명치를 꽉 누르는 듯 숨이 턱 막혔다. 공기가 폐까지 닿지 못하고 뜨겁게 목구멍을 맴돌았다.


“이러다 죽을지도 몰라.”


회의 내용도, 사람들의 얼굴도, 모든 것이 뿌옇게 흐려졌다. 오직 죽을 것 같은 공포만이 선명했다. 이 자리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발작을 일으키거나, 혹은 이대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필사적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손톱으로 허벅지를 찌르며 고통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려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미친 듯이 요동치던 심장이 제멋대로의 질주를 멈추고,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갔다. 세상의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땀으로 흠뻑 젖은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것이 나의 첫 번째 공황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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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험은 나에게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이전까지의 괴로움이 ‘마음’의 문제였다면, 이것은 명백한 ‘몸’의 문제였다.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없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신체적 반응. 그것은 내 안의 무언가가 버티다 못해 ‘쨍그랑’ 하고 깨져버렸다는 증거였다. 첫 번째 균열. 한번 금이 가기 시작한 댐은 아주 작은 물살에도 쉽게 무너져 내리는 법이다.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버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나약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 나는 용기를 내어 정신과를 찾아갔고, 의사에게 그동안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불안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병명을 듣는 순간,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이 모든 고통이 그저 나의 유난이나 나약함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의학적인 이름으로 확인받은 기분이었다.


공황이라는 신호. 그것은 내 몸이 나에게 보낸 마지막 경고이자, 변화가 필요하다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였다. 나는 이제 버티는 것을 멈추고, 완전히 부서지지 않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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