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소음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by 달글이



“자기가 원해서 나온 거잖아?”


그 말이 내 안에서 산산조각 난 유리가 되었다. 날카로운 파편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불쾌한 소리. 그게 바로 내 일상을 잠식하기 시작한 모든 소음의 시작이었다. 그전까지는 애써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회사는 더 이상 내가 성실하게 일하고 성장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정체 모를 소음으로 가득 찬, 거대한 동굴이 되어버렸다.


소음. 그건 단순히 귀에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었다. 그 소음은 여러 가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때로는 타조부장의 날카로운 지적으로, 때로는 동료들의 차가운 침묵으로, 때로는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그들의 행동으로 나타났다. 처음에는 희미했던 그 소음은 점점 더 크고 명확해지며, 내 일상의 모든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오후, 사무실 분위기가 평소와 달리 조금 들떠 있었다. 다들 슬쩍슬쩍 눈치를 보며 무언가 약속을 잡는 눈치였다. 저녁이 다가오자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타조부장이 나를 힐끗 보더니 말했다. “김 대리는 사무실 좀 지켜. 급한 연락 올지도 모르니까.”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록 사무실은 텅 비었고, 아무에게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동료의 SNS에서 그들이 나만 빼고 전부 모여 회식을 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스크롤을 내리는 내 손가락 끝이 차갑게 식어갔다. 그들의 완벽한 세상에 나만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그들은 나를 그들의 세계에서 의도적으로 지워버린 것이다.


업무에서도 소음은 계속됐다. 한번은 간단한 보고서를 작성해 올렸다. 5분이면 검토가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타조부장은 보고서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내용과는 아무 상관없는 양식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이 줄 간격은 왜 이래? 글씨체는 왜 이걸로 했어?” 그녀의 지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는 세 시간에 걸쳐 보고서를 고치고 또 고쳤다. 결국 완성된 보고서는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나만 사용하는 기이한 양식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그 양식을 나만 쓰는데 아무도 의문을 갖지않은 듯 했다. 그건 업무가 아니었다. 붉은 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 신경질적인 마우스 클릭 소리, 나직한 한숨 소리. 그 모든 것이 나를 향한 소음의 합주였다. 세 시간 동안 이어진 그 소음 속에서 내 존엄성이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갉아먹히고 있었다.

가장 괴로운 것은 형태 없는 소음이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수군거림. 내 얘기일까. 아닐 거야. 하지만 멈추지 않는 생각들. ‘모두가 나를 비웃고 있어.’ 그 환청이 나를 갉아먹었다. 심장이 멋대로 뛰고, 등줄기엔 식은땀이 흘렀다. 지끈거리는 두통. 출근길 지하철은 지옥행 열차였고, 회사 건물은 거대한 무덤처럼 느껴졌다. 문 앞에만 서면, 숨이 막혔다.


소음은 퇴근 후에도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 나는 완전히 방전된 배터리처럼 침대 위로 쓰러졌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예전에는 좋아했던 책도, 영화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다 잠들기 일쑤였다. 번아웃이었다. 내 안의 모든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되어 버린 것이다.


주말은 더 이상 휴식이 아니었다. 토요일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이제 곧 월요일’이라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다가올 일주일 동안 또 어떤 소음들이 나를 괴롭힐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차라리 이대로 잠들어 영원히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소음은 내 일상을 완전히 점령했다. 나는 더 이상 웃지도, 떠들지도, 무언가에 즐거움을 느끼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회색빛 소음 속에 갇혀, 나는 서서히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위태롭게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주 작은 충격에도 완전히 무너져 내릴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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