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네가 나가'라고 결심하기까지

by 달글이



'불안장애'. 의사가 내뱉은 그 단어는 차가운 낙인이었지만, 동시에 따뜻한 구원이기도 했다. 내 모든 고통과 혼란, 비정상적으로 뛰던 심장과 이유 없는 눈물에 이름이 붙여진 순간이었다. 그래, 이건 내 나약함이나 유난스러움 때문이 아니었어. 이건 그냥, 병이었던 거야. 치료가 필요한 상태. 나는 진단서를 손에 쥐고 병원을 나섰다. 세상이 조금은 다르게 보일 거라고 기대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진단서는 방패가 되어주지 못했다. 회사에 돌아가자 소음은 여전했고, 타조부장의 날카로운 눈초리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나는 나 자신이 ‘고장 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게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균열은 더 깊고 선명하게 나를 할퀴었다.


나는 기로에 섰다. 내 앞에는 두 개의 절벽이 나타난 듯했다. 하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뛰어내리는 '퇴사'라는 절벽, 다른 하나는 발목까지 차오른 늪에서 서서히 잠겨가는 '버티기'라는 절벽이었다.


퇴사를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했다. 당장의 생계도 문제였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실패자’라는 낙인이었다. 고작 이 정도의 시련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다는 자괴감, 주변 사람들의 실망스러운 시선, 불투명한 미래. 그 모든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나는 부서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버티는 것은? 그건 더 끔찍했다. 이미 내 몸은 한계에 다다랐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여기서 더 버티는 것은 영혼을 조금씩 갉아먹히다 결국에는 텅 빈 껍데기만 남는 길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버티는 것은 부서지는 것을 잠시 유예하는 것일 뿐, 결국 같은 종착역으로 향하는 다른 이름의 길이었다.


매일 밤, 나는 이 두 개의 길 사이에서 서성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모습이 한심해서, 잠 못 드는 밤이 길어졌다. 그러다 문득, 정말 길은 두 개뿐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버티거나, 부서지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는 걸까.


그 무렵, 나는 우연히 오디오북으로 『미움받을 용기』를 듣게 되었다. 거기서 ‘과제의 분리’라는 개념을 만났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는지는 ‘타인의 과제’이지, 나의 과제가 아니라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의 과제’뿐이라는 아들러의 말은, 내 머릿속을 지배하던 단단한 벽에 처음으로 균열을 내는 망치 소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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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의 분리. 나는 그 말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타조부장이 나에게 퍼붓는 비난과 무시는 정말 나의 문제였을까? 아니, 그건 그녀의 뒤틀린 감정과 인격의 문제였다. 그건 그녀가 풀어야 할 ‘그녀의 과제’였다. 동료들의 침묵과 방관은? 그건 그들의 두려움과 이기심의 문제였다. 그것 역시 ‘그들의 과제’였다.


나의 과제는 무엇인가. 나의 과제는 그들의 과제에 휘둘려 상처받고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소음 속에서 나 자신을 지켜내는 것이었다.


그 깨달음은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나는 문제의 본질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회사에 다니는 나’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나를 괴롭히는 저 소음들’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떠나야 할 곳은 ‘회사’라는 공간이 아니라, 나를 병들게 하는 ‘소음의 근원지’였다.

어느 날, 또다시 시작된 타조부장의 비난 앞에서 나는 속으로 외쳤다.


‘이건 당신의 문제야. 당신의 과제라고. 그러니까 이제 내 인생에서 당신이 좀 나가줄래?’


그건 단순한 정신 승리가 아니었다. 나와 문제를 분리하는 첫 번째 시도였다. 그녀의 말은 더 이상 나를 향한 칼날이 아니었다. 그저 의미 없는 소리,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는 공허한 소음일 뿐이었다. 내가 그 소음에 의미를 부여하고 상처받기를 거부하는 순간, 그녀는 나를 통제할 힘을 잃었다.


이제 이 게임의 룰은 내가 정한다. 그러니 내 세상에서, ‘네가 나가’.


이 결심은 나에게 세 번째 길을 보여주었다. 버티거나 부서지는 것이 아닌, ‘흘려보내는’ 길. 그리고 그 길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나는 인사팀의 문을 두드렸다. 퇴사 면담이 아니었다. 부서 이동을 신청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도망이 아니었다. 나를 지키기 위한 가장 영리한 반격이자,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첫 번째 전투였다. 나는 나를 부서뜨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 결심 앞에서, 나는 아주 오랜만에 단단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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