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 같았다. 잘 지내다가도 갑자기 목 뒤가 서늘해지고, 심장이 이유 없이 쿵쾅거리는, 그런 녀석이었다. 의사에게 처방받은 약은 급한 불을 꺼주는 소화기 같은 역할을 했지만, 언제 또 불이 날지 모른다는 근본적인 두려움까지 없애주진 못했다. 나는 깨달았다. 이 불안이라는 녀석과 앞으로도 계속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녀석을 다루는 나만의 방법을 터득해야만 한다는 것을.
이 장에서는 내가 직접 시도하고 효과를 보았던, 불안한 나를 돌보는 몇 가지 구체적인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건 정답이 아니다. 그저 캄캄한 동굴 속에서 더듬거리며 찾아낸, 나만의 작은 생존 도구들에 대한 기록이다.
불안은 생각을 먹고 자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정적인 생각들은 불안이라는 괴물을 점점 더 크게 만든다. 그래서 나에게는 생각을 강제로 멈추게 할 ‘셧다운’ 버튼이 필요했다. 그 버튼이 바로 운동이었다.
처음에는 친구의 권유로 헬스장에 따라나섰다.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한 상태에서 쇠질이라니. 하지만 막상 땀을 흠뻑 흘리고 나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몇 시간 동안 나를 괴롭히던 복잡한 생각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리는 순간에는 오직 내 근육의 움직임과 거친 숨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차가운 쇠의 감촉, 거친 숨소리,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순간. 나는 오직 그 순간에만 존재했다. 무게를 들어 올리는 것은 단순히 몸을 단련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었고, 흩어진 정신을 하나로 모으는 의식이었다. 어제는 들지 못했던 무게를 오늘은 들어 올리는 그 순간의 성취감은, 회사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종류의 것이었다. 그것은 타인의 인정이 아닌, 나 자신의 성장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나도 꽤 강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은 바닥까지 떨어졌던 나의 자존감을 조금씩 일으켜 세워주었다.
어느 날, 본가에 갔다가 먼지 쌓인 옛날 일기장을 발견했다. 학창 시절의 풋풋한 고민들이 담긴 일기를 읽으며 나는 피식 웃기도 하고, 그때의 나를 토닥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문득, 지금의 나에게도 이런 기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감정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CCTV처럼.
나는 매일 밤 잠들기 전, 그날 있었던 일과 그때 느꼈던 감정을 분리해서 적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사실: 타조부장이 보고서에 대해 비난했다.
감정: 수치스럽고 억울했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생각: 하지만 그의 비난은 인격 모독에 가까웠고, 보고서 자체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건 그의 감정 문제이지, 나의 문제가 아니다.
글자로 적힌 내 감정은 더 이상 나를 집어삼킬 듯한 괴물이 아니었다. 그저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나는 내 감정의 주인이 되어, 나를 괴롭히던 생각들로부터 스스로를 변호하기 시작했다. 일기는 가스라이팅이라는 안개 속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등대와도 같았다.
괴로운 순간이 닥쳤을 때, 나를 지켜줄 비상 무기가 필요했다. 나는 나만의 ‘주문’을 몇 개 만들어 마음속에 품고 다녔다. 힘든 순간마다 이 문장들을 되뇌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이건 저 사람의 감정이지, 내 것이 아니다.”
“네가 하는 말이 회사를 대표하는 말은 아니잖아?”
“지나갈 것이다. 이 또한 결국엔 지나갈 것이다.”
이 문장들은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내는 방패이자, 때로는 먼저 휘둘러 나를 지키는 짧은 검과도 같았다. 소음이 내 마음에 닿기 전에, 나는 이 주문들을 꺼내 들어 먼저 나를 방어했다. 덕분에 나는 상처받는 대신, 상황을 좀 더 차분하게 바라볼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퇴근 후에도 회사에서의 감정을 집까지 끌고 오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회사와 나를 분리하는 ‘의식’을 만들었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속으로 외치는 것이다. “오늘의 나는 여기까지.” 그리고 회사용 메신저가 깔린 업무용 핸드폰은 거실 한쪽에 던져두고 다시는 쳐다보지 않았다.
이 간단한 의식은 생각보다 효과가 컸다. 공간의 분리를 통해 감정의 분리를 유도하는 것이었다. 집이라는 공간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고, 그곳에서는 더 이상 회사의 소음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몸에 각인시키는 과정이었다.
이런 방법들이 불안을 완전히 없애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불안이라는 파도에 속수무책으로 휩쓸려가지 않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파도가 밀려올 때, 나는 이제 나만의 서핑보드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그 파도를 타 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