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 이동 후, 내 세상에 처음으로 ‘고요’가 찾아왔다. 귀를 먹먹하게 만들던 소음이 사라진 자리에 내려앉은 그 어색한 평화. 그것은 나에게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새로운 자리는 팀이 없는, 섬처럼 동떨어진 곳이었다. 처음에는 그 어색한 정적이 불안했다.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다 갑자기 모든 소리가 멎어버린 듯한, 기이한 평화.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나는 그 고요함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했다.
더 이상 등 뒤에서 들려오는 수군거림도, 나를 향한 날 선 지적도 없었다. 나를 옥죄던 타조부장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회색빛 소음이 걷힌 세상은 놀라울 정도로 선명했다. 나는 비로소 온전히 내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고, 퇴근 후에는 거짓말처럼 두통이 사라졌다. 소음의 진원지에서 물리적으로 벗어나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처방이었다.
하지만 그 평화는 길지 않았다. 회사는 나를 무한정 섬에 가둬둘 생각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새로운 팀에 배정되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 팀은 모두가 기피하는, 일종의 유배지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곧 알게 되었다. 내가 그 팀으로 옮겨가자, 타조부장의 교묘한 괴롭힘이 이제는 팀 전체를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소한 업무 트집, 불필요한 보고 요구, 은근한 책임 전가. 나 때문에 다른 동료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다시 죄책감의 늪으로 밀어 넣었다.
팀원들은 나를 대놓고 원망하지는 않았지만, 복도에서 마주쳐도 못 본 척 시선을 피했고, 내가 무언가 물으면 짧은 단답으로 대화를 끊어버렸다. 그들의 등 뒤로 보이지 않는 차가운 벽이 느껴졌다. ‘너 때문에 우리가 피곤해졌다’는 무언의 압박. 예전의 나라면, 나는 또다시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를 고립시켰을 것이다. ‘역시 나는 어딜 가나 문제아’라며 자책하고, 그들의 차가운 시선을 어떻게든 버텨내려 애썼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과거의 내가 아니었다. 나는 아주 작은 승리들을 통해, 문제를 마주하고 해결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참이었다. 나는 이대로 다시 투명인간이 되기를 거부했다.
며칠을 망설였다.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분위기만 더 어색해지는 건 아닐까? 하지만 이대로 숨어버리면, 나는 다시 과거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그날 저녁, 떨리는 목소리로 팀원들에게 회식을 제안했다.
“제가 팀에 온 지도 좀 됐는데, 같이 저녁 한번 하시죠. 제가 쏘겠습니다.”
다들 마지못해 따라나서는 분위기였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고깃집에서, 나는 먼저 입을 열었다.
“사실, 제가 오고 나서 다들 힘들어지신 거 압니다. 정말 죄송하게 생각해요.”
그리고 나는 내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지난 몇 달간 내가 겪었던 일들,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던 것, 그래서 부서를 옮길 수밖에 없었던 이유까지. 변명이나 동정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솔직하게, 내 상황을 이해받고 싶었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지글거리는 고기 소리만이 어색하게 공간을 채웠다. 모두의 시선이 불판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심장이 다시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때, 가장 연차가 높은 선배가 소주잔을 채우며 입을 열었다.
“김 대리 잘못이 아니지. 원래 이상한 사람이야, 그 사람.”
그 한마디가 신호탄이었다. 다른 팀원들도 기다렸다는 듯, 각자 겪었던 타조부장의 만행을 봇물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날 밤, 우리는 처음으로 동료가 아닌 ‘전우’가 되었다. 각자의 외로운 싸움이, 우리의 공동의 싸움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 팀은 놀라울 정도로 단단해졌다. 타조부장의 공격이 있을 때면, 우리는 서로를 감싸주고 함께 대응했다. 누군가 부당한 지시를 받으면, 다른 사람이 나서서 “그건 저희 팀 업무가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냈다. 우리는 더 이상 각개전투를 하는 고립된 병사가 아니었다. 서로의 등을 지켜주는 든든한 연대였다.
회사의 소음이 완전히 멎은 것은 아니었다. 타조부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부조리한 일들은 계속 일어났다. 하지만 그 소음은 더 이상 나를 잠식하지 못했다. 내 곁에는 함께 소음을 막아주는 방패가 되어주는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깨달았다. 진정한 평화는 소음이 없는 고요한 세상이 아니라, 어떤 소음 속에서도 기꺼이 내 편이 되어줄 사람들의 존재에서 온다는 것을. 혼자서는 부서질 것 같던 내가, ‘우리’가 되었을 때 비로소 단단해질 수 있었다. 회사의 소음은 여전했지만, 내 세상은 아주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평온함을 되찾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