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렀다. 내 삶을 뒤흔들던 거대한 폭풍우는 이제 저만치 물러나, 가끔 먼 곳에서 천둥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오는 정도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고,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내가 더 이상 ‘완벽한 괜찮음’을 추구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불안이라는 감정 자체를 내 삶에서 완전히 없애버리고 싶었다. 불안이 없는 상태, 늘 평온하고 단단한 상태가 되어야만 ‘극복’한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불안은 감기처럼, 살면서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을. 중요한 것은 불안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불안이 찾아왔을 때 그것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나는 여전히 병원에 다닌다. 정기적으로 의사 선생님을 만나 내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고, 필요할 땐 약의 도움도 받는다. 예전에는 약에 의존하는 내 모습이 나약하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이건 나를 아끼고 돌보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 중 하나다. 당뇨 환자가 인슐린을 맞고, 고혈압 환자가 혈압약을 먹는 것처럼, 나 역시 내 마음의 건강을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뿐이다. 그걸 부끄러워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불안이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날이면, 나는 이제 당황하지 않는다. ‘아, 왔구나’ 하고 그 존재를 인정해준다. 그리고 나만의 생존 도구들을 하나씩 꺼내 든다. 퇴근 후 헬스장으로 달려가 땀을 흠뻑 흘리거나, 조용한 카페에 앉아 엉망인 마음을 일기장에 쏟아내거나, 나를 지켜주는 주문을 조용히 되뇌기도 한다. 이런 방법들이 불안을 당장 사라지게 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내가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도록 든든한 방파제가 되어준다.
타조부장은 어떻게 되었냐고? 얼마 전, 그녀는 부당한 방법을 통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갔다는 사실이 밝혀져 각종 법적 조치에 휘말리게 되었다. 그녀를 돕던 사람들도 모두 등을 돌렸고, 결국 그녀는 회사에서 불명예스럽게 퇴사했다. 권선징악.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니 조금은 허무하기도 했다. 몇몇 동료들은 나에게 그녀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해서 결정타를 먹이자고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건 더 이상 나의 과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의 복수는 그녀를 내 인생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이제 타인의 시선에서 꽤 자유로워졌다. 물론 가끔은 흔들린다. 하지만 예전처럼 다른 사람의 평가에 내 존재의 가치를 맡기지는 않는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단단한 삶의 중심이 생긴 기분이다.
돌이켜보면, 그 지독했던 시간은 나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지만, 동시에 소중한 것을 남겨주기도 했다. 나는 내 안의 연약함과 마주했고, 그것을 끌어안는 법을 배웠다. 넘어지고 깨지는 과정을 통해,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법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불안 속에서도 나를 지키고 사랑하는 법을 터득했다.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아는 나는, 어제의 나보다 훨씬 더 강하고 지혜로우니까. 내 삶의 파도가 또 어떻게 쳐올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제 그 파도를 기꺼이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다. 불안하게 보일지라도, 나는 결코 부서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