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숫자부터 떠올려왔다. 액수는 판단을 단순하게 만든다. 많으면 안심이고, 적으면 불안이다. 그래서 월급은 늘 생활의 언어로만 설명되었다. 가정을 지키고, 내일을 미루게 만드는 장치로서의 돈이다.
그런데 오늘 쓰는 글에는 금액을 붙일 수가 없다. 0원도 아니고, 1천만 원도 아니다. 이 글은 아예 값이 비어 있는 상태다. 숫자를 쓰지 않은 월급 명세서처럼, 의미는 있지만 환산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지금의 내가 그 공백을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직장에서 받는 월급은 기능이 분명하다. 매달 들어오고, 빠져나갈 곳이 정해져 있다. 불안을 잠시 눌러두는 힘이 있고, 그 힘으로 가족은 일상을 유지한다. 이 월급은 이미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출근한다.
그러나 글을 쓰며 바라는 것은 다른 종류의 월급이다. 그것은 생활비가 아니라 안식비에 가깝다. 내가 나로 살아도 괜찮다는 증명,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도 된다는 허가. 이 월급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아무 금액도 적히지 않은 글만 남아 있다.
예전에 2천 원을 벌어본 적이 있다. 액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돈은 노동의 대가라기보다, 나를 외부에서 인정한 최초의 흔적이었다. 그래서 첫 월급보다 오래 기억에 남았다. 지금 쓰는 이 글은 그때보다 더 값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값을 매길 수 없다.
이 글이 언젠가 얼마가 될지는 알 수 없다. 2천 원일 수도 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분명한 건, 이 공백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월급이 없는 글을 계속 쓰는 행위는 낭만이 아니라 판단이다. 가정을 지키는 월급과, 나를 지키려는 시도 사이에서 생기는 마찰이다.
그래서 오늘의 글은 미완이다. 금액을 쓰지 않았고, 결론도 없다. 다만 하나의 상태만 남아 있다. 나는 지금, 값이 비어 있는 글을 월급처럼 다루고 있다. 이 공백이 언젠가 숫자가 될지, 끝내 아무것도 되지 않을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지금의 판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