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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칠일 Jul 13. 2021

아아. 글쓰기.

내 삶을 구성하는 '아' 시리즈




어째 나 빼고 다들 한가하게 연말을 만끽하는 것 같은 12월 30일. 프로젝트로 정신없이 일하는 와중에 책상 한구석에서 진동이 울렸다.





나 시킨 거 없는데? 잠시 천장을 쳐다보며 생각하다 이내 깨달았다. 아, 크리스마스 전통.

고등학교 친구들 사이에는 연말마다 모여 선물을 주고받는 암묵적인 룰이 . 하지만 올해는 시국이 시국인지라 카톡으로만 선물을 주고받기로 했던 것이다. 배송 폭주로 지연된다고 해서 내년에나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구나. 얼른 퇴근해서 선물을 뜯어볼 생각에 타자를 치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조금만  힘내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필사 노트'


선물은 초콜릿이나 캔들 정도를 예상했던 나의 기대보다 훨씬  로맨틱한 것이었다. 필사 노트라니. 그것도 윤동주 시인의. 핸드폰으로 인증샷을 찍어 단톡방에 올리며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네가 이런 감성적인 사람이었다니, 선물  쓸게. 하트를 날리는 이모티콘까지 보내고 책상에 펼쳐진 선물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이런 예쁜 선물을  친구가 고마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번아웃이라는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모든 감정들과 마찬가지로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점점 스며들다 종내에는 완전히 집어삼켰겠지. 가을이 지나고 제법 겨울이라 부를만한 추위가 시작되던  처음으로 뭔가 이상하다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나마 번아웃이라는  깨닫고 빠져나오려 발버둥 쳤지만 그땐 이미  마음이 무기력에 잠식된 뒤였다.




처음엔 겨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누구보다 겨울이란 계절을 힘들어하는 편이니까. 겨울만 되면 몸을 웅크리며 '우울해', '추운 거 싫어', '따뜻한 나라로 떠나고 싶어'를 입에 달고 사는 부류였다. 자연히 다른 계절보다 움직임이 둔해지는 건 늘 겪던 일이기에 마음의 변화를 계절 탓이라 부르며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뭔가 크게 잘못됐다고 느꼈다.


결정적으로, 그렇게 좋아하던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어떤 걸 보고 겪어도 글로 옮기고 싶지 않았다. 침대에 가라앉은 몸을 일으켜 노트북 앞에 앉아도 깜박이는 커서를 바라보다 끝내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이불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한없이 누워 딱히 볼 것도 없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속엣말을 삼켰다.

다시는 글을 못 쓰면 어떡하지.




그런 나날을 보내고 있던 차에  필사 노트를 선물로 받게  거다. 친구에게는  쓰겠다고 했지만 과연 정말    있을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지금의 상태가 정말이지 지긋지긋하다는 .  무기력을 떨치려면 미약한 발버둥이라도 쳐봐야 한다는 , 사실  알고 있다.



 손에 들어오는 노트 내려다보며 심호흡을 크게 내쉰다.

까짓 거, 써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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