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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칠일 Sep 02. 2021

아날로그는 여전히

내 삶을 구성하는 '아'





오랜만에 집에 놀러 온 친구의 손에는 폴라로이드가 들려 있었다.

'미니샷 레트로'라는 이름의 아기자기한 그것은 기존의 폴라로이드와 포토 프린터의 기능이 합쳐져 블루투스로 핸드폰과 연결해 사진을 인화하는 기능이 있었다. 스마트폰 속 디지털 코드로 저장된 사진이 실체를 가진 필름으로 인화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친구의 손에 들려있는 게 마치 마법 상자 같았다.


"그런데 이걸 굳이 왜 산 거야? 너 핸드폰도 화질 좋잖아."

"그냥, 좋아서."


친구의 대답은 모호했지만 왠지 납득이 가는 이유였다. 여러 가지 감정을 함축한 '그냥'이란 말에서 2000년대 초반의 향수가 느껴졌다. 어쩌면 이 폴라로이드가 네게는 시간이 흘러도 지키고 싶은 가치 아닐까.


모두들 자신만의 노스텔지아에 골동품 하나씩은 묻어두고 살지 않나. 나의 경우는 그게 골드스타 텔레비전이었다. 엘지라는 이름이 있기도 전인, 무려 금성사에서 나온 작은 텔레비전, 아니 '테레비'. 아이스박스와 똑같은 두께의 테레비는 맞벌이를 하는 바쁜 부모님 대신 내 유년시절을 책임졌던 선생님이자 둘도 없는 친구였다.



얇아지는 TV 시장에 과연 그럴 일이 있을까마는, 훗날 골드스타와 비슷한 아날로그 텔레비전이 출시된다면 마음속에 잃어버린 섬 하나가 둥실 떠오르는 기분이 들 것 같다. 손바닥만 한 화면의 그것을 내 방 한쪽에 고이 모셔 두고 넷플릭스를 보며 그렇게 저녁을 보내고 싶다. 어릴 적 투니버스를 보며 부모님의 퇴근을 기다렸던 것처럼.



삶은 점점  빨라지고, 감성의 영역마저 기계가 차지하는 세상이지만 앞으로도 많은 아날로그가 '그냥, 좋아서'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라고 믿는다. 세상이 편리해질수록 역설적이게도 손때 묻은 불편함을 그리워하는 . 사람들은 예전의 것들이 주는 추억과 현재의 편리한 기술을 합쳐 새로운 방식의 아날로그를 탄생시킬 것이다. 친구가 애정하는 폴라로이드 사진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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