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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칠일 Jul 28. 2021

아침에 먹는 파김치의 맛

내 삶을 구성하는 '아'



오늘처럼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서 여유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늘 6시에 일어나 부지런히 밥상을 차리는 부모님과는 다르게, 나는 알람이 울려도 한참을 웅크려있다가 헐레벌떡 준비하는 날이 대부분이니. 일 년 중 몇 없는 이런 날엔 기념으로 아침밥을 먹어줘야 한다.


"웬일이니, 네가 이 시간에 일어나 밥을 다 먹고."

"그러니까.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야."


놀란 목소리를 뒤로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적당히 담아 식탁에 앉는다. 채소와 산나물을 좋아하는 엄마는 평소 우리 집 밥상을 고기 모양 비슷한 것도 찾아볼 수 없게 푸릇푸릇하게 차린다. 그런데 오늘은 참치 찌개에 계란 프라이까지 있다. 이 정도면 우리 집에선 진수성찬이다.


"잘 먹겠습니다-"


아침에는 속이 더부룩하고 입맛도 없는 편이다. 부모님의 성화에 억지로 한 숟갈 입에 넣으면 까슬한 입안에 굴러다니는 밥알이 생소하게만 느껴져 영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일찍 일어나는 타입도 아니었기에 아침밥을 포기하고 살았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입맛까지 돈다. 새빨간 김치찌개를 밥에 비비고 반숙된 프라이의 노른자를 톡 터트려 함께 먹는다. 우와, 왜 이렇게 맛있지?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 갑자기 밥그릇에 파김치가 놓인다.


"파김치도 좀 먹어봐. 저번 주에 새로 주문한 건데 정말 맛있어."

"응. 진짜 맛있다."

"저번 가게 것보다 맛있지? 거기꺼 생각보다 별로여서 언제 다 먹지 했는데 네가 많이 먹어서 금방 없어지더라. 이번엔 다른 곳에서 주문했어."

"좋아. 이번에는 더 빨리 먹어치워 줄게."

"하여간 파김치 정말 좋아해. 너 자취할 때도 파김치를 제일 많이 싸줬잖니."


엄마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름다웠던 추억의 한 페이지로 그때를 회상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아련하게 얘기하는 바로 '그 파김치'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다. 슬쩍 그때의 에피소드를 들춰내니 꼭 안 좋은 것만 잘도 기억한다며 토라진 얼굴로 내게 핀잔을 준다.




5 , 엄마는 강원도 연천군에 위치한 학교로 발령이 났다.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은 인천, 아빠의 직장은 군포였으니 각자의 생활권으로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나의  자취 생활이 시작되었다. 매일 전화해서  먹고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지만 스무 살의 호언장담이 엄마는  미덥지 않았나 보다. 연천으로 가는 주말이면 나는 어김없이 엄마가   온갖 반찬을 등에 짊어지고 자취방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날도 늘 그렇듯 실랑이를 벌였다. 더 담지 않아도 괜찮다고, 어차피 남겨서 버려야 하니까 너무 많이 싸주지 말라고 한사코 사양하는 나를 뒤로하고 엄마는 기어코 파김치를 가방에 집어넣고 지퍼를 닫아주었다. 터질 것 같은 거대한 배낭을 메고 지하철과 버스를 거쳐 자취방까지 장장 3시간. 녹초가 된 나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가방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철푸덕 주저앉았다.


그런데, 뭔가 싸했다.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머리에 스쳤고 나는 천천히 가방을 바라보았다. 아니야, 설마. 아닐 거야. 제발. 내 직감이 틀리기를 기도하며 가방을 여는 순간, 아아. 역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가방에 세로로 욱여넣은 파김치 뚜껑 사이로 양념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엄마의 특제 매실 액기스가 들어간 파김치 국물은 가방에 담은 옷가지와, 전공책과, 다른 반찬들까지 모든 것을 적셔놓았고 끈적하게 굳어버린 전공책은 페이지를 펼 수 조차 없었다. 망했다. 완전히 망해버렸다.


그날 밤, 나는 잘 들어갔느냐는 엄마의 전화에 다시는 파김치를 주지 말라며 소리를 질렀고 새벽녘이 되어서야 뒷정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속상해할 걸 알면서도 그때의 나는 엄마의 마음을 살펴가며 말할 만큼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누구의 잘못이라 할 수 없는 일에 - 엄밀히 따지면 반찬통을 부주의하게 다룬 나의 잘못인데도 - 철없던 나는 제 분을 못 이겨 씩씩댔다.


그날 이후로 엄마는 반찬을 최대한 적당히 담아주고, 나는 중요한 물건과 반찬은 한 가방에 같이 담지 않는 것으로 무언의 합의점을 찾았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은 모두에게 썩 유쾌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딸에게 그저 많은 걸 주려 했을 뿐인데 고맙다는 말은커녕 성난 목소리만 들었던 엄마도, 생각지도 못한 불행에 그 안에 들어있던 모든 것을 버려야 했던 나도.




때때로 호의는 남에게 전달될 때 이미 식어버리거나 상할 수도 있다. 한 번 경험해서 알고 있던 인생의 교훈이 새삼 생생하게 떠올라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근데 오늘 아침의 파김치는, 참 맛있네.

대각선으로 앉은 엄마의 얼굴을 슬쩍 바라본다. 내가 여전히 잠에 취해 있는 아침에도 엄마는 늘 가족을 위해 밥을 짓고, 반찬통에 파김치를 담고, 한사코 사양하는 딸의 입에 한 숟갈을 먹이며 오늘도 든든한 하루를 보내길 기도한다. 그런 엄마에게 그날의 미안함까지 담아 감사인사를 건넨다.



"밥 진짜 맛있네.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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