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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칠일 Nov 04. 2021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기

내 삶을 구성하는 '아'



책상에 오래 앉아 있어 굳어진 어깨를 참지 못하고 결국 마사지샵을 찾았다. 예전부터 친구가 강력하게 추천했던 곳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찾게 되었다. 동네에서 마사지 좀 받았다 하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유명한 이곳. 예약할 때부터 시간을 맞추기 쉽지 않던 곳이라 과연 소문만큼 좋은 곳일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네 시 예약한 분이시죠?"



낮고 편안한 목소리가 나를 반긴다. 고개를 들어보니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가 서 계신다. 알고 보니 이곳은 아저씨 혼자서 운영하는 작은 1인 마사지샵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예약이 치열했던 거구나.


아담한 응접실의 소파는 편안했다. 맞은편에 앉은 아저씨는 차트를 들고 와 여러 가지 질문을 하셨다. 어디가 주로 아픈지, 의자에 앉을 때 불편한 부위가 있는지, 상처 등의 이유로 마사지할 때 조심해야 할 곳이 있는지. 신중히 나의 대답을 적어 내려간 후 마사지복을 건네며 아저씨는 내게 당부했다.


"처음이시니까, 꼭 아프면 아프다고 얘기해 주세요. 그래야 마사지하면서 어느 정도 세기로 할지 서로 맞춰갈 수 있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춤은 가장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였다. 사회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노래만 들으면 몸이 들썩이는 내게 퇴근 후 댄스 학원으로 향하는 건 당연한 일상이었다. 고층 빌딩에 있는 그곳은 멋진 전망을 자랑하는 만큼 선생님과 수강생들까지 소위 '힙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처음에는 그런 멋진 사람들과 같은 수업을 듣는다는 게 그저 기쁘기만 했다. 하지만 학원에서 사계절을 겪는 동안 나는 어딘지 모르게 주눅 든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아무리 연습해도 선생님의 시범과는 전혀 다른 나의 모습이 거울에 비치면 괜스레 스스로를 미워하기도 했다.


특히나 이렇게, 리듬 수업의 마무리 단계인 다리 찢기 스트레칭을 할 때면 남들과 확연히 차이 나는 유연성에 구석으로 숨고 싶어졌다. 이럴수록 더 노력해야 해. 쥐가 날 것 같은 다리를 양쪽으로 무리해서 벌렸다. 조금 더, 조금만 더. 그때 눈앞으로 찌푸린 표정의 선생님이 불쑥 나타났다.


"아이고, 그렇게 이 꽉 물고 참으면 뭐가 돼? 아프면 아프다고 얘길 해야지!"


타박하며 등짝을 치는 손길에는 걱정이  실려 있었다. 그 손길은 지금까지 품고 있었던 열등감을 술술 내뱉기에 충분했다.


"선생님. 저 여기 온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다리가 다 안 찢어져요. 다른 분들은 180도 찢다 못해 상체까지 바닥에 붙이는데."


"자기 여기 스트레스 풀려고 온 거 아니야? 취미 생활하려고 온 거 아니냐고."


"네? 그렇긴 한데......"


"그럼 왜 그렇게 목숨 걸고 해? 즐기면서 해. 다리 좀 못 찢으면 어때. 처음 왔을 때보단 많이 늘었잖아."


"그치만..."


"춤을 오래, 잘 추려면 몸을 혹사하면 안 돼요. 지금 못하는 걸 억지로 하겠다고 무리해봤자 부상만 얻을 뿐이야. 아프면 거기서 멈추고, 어려운 동작 있으면 내가 따라 할 수 있을 만큼만 해요. 아무도 뭐라 안 해."


알았지? 하고 웃으며 내 저린 허벅지를 주물러 주는 선생님의 얼굴이 그날따라 든든해 보였다. 가까이에서 본 선생님은 작고 마른 체형임에도 온몸에 탄탄한 근육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것은 한눈에 봐도 슬럼프를 이겨내고 수십 수백 번의 담금질로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그 앞에서 내 1년의 부진은 얼마나 철없는 투정이었던가.


때때로 시각적 자극이 말보다 더 뇌리에 박힐 때가 있다. 그날 가까이서 봤던 선생님의 근육, 단단하고도 유연했던 그 모습은 앞으로 춤을 출 때 무엇을 우선시해야 하는지 보여주었다. 춤을 멋있게 잘 추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춤을 추며 느끼는 행복감이고, 행복을 느끼려면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아프지 않으려면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모른 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아야. 거기, 방금 되게 아팠어요."

"네. 맞아요. 지금 약간 거북목인 것 같네요. 평소에 턱을 당겨서 앉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아요."


아프다는 말에 목을 마사지하던 손이 조금 느슨해진다. 강하지만 요령 있는 압력에 시원하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여기 너무 좋다, 꼭 다시 방문해야지. 적당히 따뜻한 침대 온도에 몸이 점점 나른해진다. 나의 아픔을 남에게 알려주는 게 꼭 흠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며 무거워진 눈꺼풀을 감는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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