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나오미의 기쁨도서관 사서 나오미입니다. 여러분은 어릴 적 어떤 이이였는지 기억하시나요? 어릴 때 내가 했던 말, 엄마 아빠가 두고두고 들려주시는 '어린 나의 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영상이나 음향 기술이 최근에는 많이 발달했지만 제가 아이였던 80년대에는 그런 것이 별로 없었어요. 엄마는 사진을 앨범에 모아두고 상장을 파일링해두셨지만 제 목소리는 남아있지 않아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며칠 전 반가운 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열림원에서 서평 기고를 부탁하는 제안이었지요. <어린이의 말>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는데요. 메일 속에는 책의 콘셉트를 소개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중 [어쩌다 '어른이'가 되어 수시로 흔들리는 삶에서 제대로 된 행복을 찾고 싶은 어른들]이라는 부분에 팍 꽂혔어요. 그래서 긍정적 회신을 보냈고 다음 날 책이 도착했습니다.
프롤로그부터 읽기 시작하는데 '이건 그냥 서평이 아니라 기쁨 도서관에 연재해야겠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뭉클하면서도 쿡쿡 쑤시고 아프기 시작했거든요. 어린이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시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쓰신 책이라는 것에 한 번 울컥, '이런 어른도 있구나!' 하며 울컥. 분명 심리치유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필이 딱 오더라고요!
이 책의 저자는 KBS와 MBC에서 13년 간 방송작가로 글을 써오신 박애희 작가님입니다. 함께 사는 아들 J가 해준 말들, 동화책, 영화, 각종 이야기에 등장하는 '어린이들의 고운 말'을 실어 만든 것으로, 아이들의 세계를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바라보시는 작가님의 모습이 저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나도 어릴 때 누군가가 사랑의 눈으로 봐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쪼끄마한 아이였을 때 나도 예쁜 말로 어른들을 위로해 주었을까?'
'완고한 부모님 때문에 감히 해보지 못한 말은 어떤 게 있었을까?'
책을 편지 얼마 안 되어 속상한 마음,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한참 있었습니다. 기록되지 못한 나의 지난날. 제대로 기억해주지 못한 부모님.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게 스스로의 문제라 여겨 괴로워했던 시간들을 멍하니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추슬러 다시 책을 손에 들었지요.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 감당하기 힘들어하던 '억울함'이 무엇으로 인한 것인지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항상 자신보다 작고 약한 존재에게 마음을 내어준다. 그 대상은 생물과 무생물을 가리지 않는다. 강아지 인형이 외로울까 봐 곰 인형을 옆에 앉혀주고, 과자 봉지에 그려진 귀여운 꿀벌이 안타깝고 안쓰러워서 "엄마, 안 버릴 거지?" 재차 확인하고,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연필을 연필깎이에 넣었다가 캐릭터가 사라질까 봐 몇 년째 새 연필을 쓰지도 못하고, 차도에 나와 있는 비둘기가 혹시라도 차에 치일까 봐 달려가 발을 구르며 날려 보내고, 보도블록에 나온 달팽이가 말라죽을까 봐 조심스럽게 들어 화단으로 옮겨주는 아이들을 종종 만난다. 운 게도 그들의 맑고 따뜻한 애정을 마주하면 이 말이 너무 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린다.
있지, 너희의 그 마음들이 너희를 지켜줄 거야.
너희는 괜찮을 거야.
<어린이의 말> by 박애희
어린 시절, 부모님은 맏이였던 제게 너무 큰 기대를 거셨던 모양입니다. 말과 행동이 늦다고 핀잔을 주시고, 새로운 것을 한 두 번 안에 해내지 못하면 뒤충이, 바보 등신이라고 놀리셨습니다. 기분이 상해 씩씩거리면 예의가 없다 혼내셨죠. 책을 읽으며 어린아이 시절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린 저를 발견했습니다. 캐릭터가 지워질까 연필을 깎지 못했던 저를 어리석다 비난하셨던 부모님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누군가는 그 행동을 사랑스럽다 여기는데 왜 나는 그런 대접을 받지 못했을까 하며 속상해지더라고요.
'나는 어린데...'라는 마음이 억울함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물레를 돌리면 끝없이 실이 나오는 것처럼 제 마음속에는 억울함을 생산하는 무언가가 있었지요. 그게 바로 '어린 존재였던 제가 그 모습 그대로 살 수 없었던 것을 슬퍼함'에서 오는 것임을 발견했답니다.
요새 저는 적극적 애도의 기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기일 때 아기로서 사랑받을 수 없었고, 제대로 된 공감을 받지 못해 나 자신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걸 슬퍼합니다. 가끔 툭 하고 터져 나오는 눈물을 가눌 수 없어 길에서도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젖은 머리를 말리다 엉엉 울기도 합니다.
뭐가 그렇게도 두려웠던 걸까요? 제가 지키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책에는 아이들의 성장과 성숙에 대한 재미난 동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누구나 마음속 구슬이 깨지며 어른이 된다]라는 챕터에 소개된 유은실 작가님의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이라는 책인데요. 주인공 비읍이는 산타 할아버지 이야기가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중고 서점에서 일하는 언니로부터 듣게 됩니다. 그로 인해 비읍이의 마음속에 있던 구슬이 하나 깨지고 말았죠. 산타의 진실을 말해준 언니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간다고 위로합니다.
철이 들고 어른이 되는 동안 내어줘야 했던 구슬들이 내게도 있다.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고, 나는 꽤 대단한 아이라고 한껏 자부하다가 나보다 더 뛰어난 친구들 앞에서 구슬이 하나 깨어졌다.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던 구슬은 입시를 치르면서 부서졌다. 세상은 내게 마냥 다정할 거라고 믿던 순진한 구슬은 내 손으로 처음 돈이라는 걸 벌면서 깨뜨렸다. "스물여섯이 된 해의 마지막 날, 여섯 시 정각에 꼭 만나는 거야. 어른이 돼서. 정말 멋지겠지?" 열몇 살 소녀들이 했던 약속을 서른이 훌쩍 넘긴 어느 날에 떠올리다가 내 곁에 많은 이를 떠나보내는 게 인생이라는 걸 느끼며 구슬 하나를 조용히 떨어뜨렸다.
<어린이의 말> by 박애희
태어났을 때 제 마음속에도 구슬이 여러 개 있었을 것 같아요. 친척들 돌보시느라 딸들에게 쓸 돈이 없다는 걸 발견했을 때 구슬을 떨어뜨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디폴트 값으로 사랑받아보려 애썼지요. 칭찬을 먼 훗날로 미루시는 것뿐이지 언젠가는 내가 원하는 무한정의 사랑을 해줄 거라는 믿음을 저는 절대 깨뜨리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지난주에 그 구슬을 바닥에 툭 떨어뜨리며 많이 울었습니다.
어른이 되는 게 두려웠던 걸까요? 아니면 구슬이 깨지는 것이 무서웠던 걸까요? <어린이의 말>을 읽으며 제 안에 한 번도 내뱉지 못한 수많은 말들이 존재하는 걸 보며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혼자 읽다 눈물샘이 툭 터지기도 하고 책 내용이 좋다며 남편과 동생에게 읽어주다 또 울었지요.
신혼 초, 운동하자며 산책을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대형 완구를 파는 가게가 눈에 띄었죠. 얼굴이 하얀 토끼인형이 분홍색 옷을 입고 창가에서 예쁘게 웃고 있었어요. 저는 자석에 끌리듯 다가갔습니다. 창가에 거의 붙어버릴 듯이 눈에 토끼인형을 꽂은 저를 보며 남편이 말했습니다.
"이거 사줄까?"
의아했어요. 왜 사준다고 하는 거지?
"아니. 아니에요."
"사러 들어가요."
"(인형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아니에요. 사고 싶어서 그러는 거."
평생 단 한 번도 누군가 말하지 않은 걸 먼저 알아준 적이 없었기에, 결국 그날 토끼인형을 안고 돌아오면서도 감동할 수도 기쁘거나 할 수도 없었어요. 가슴이 너무 먹먹해서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 그 인형이 가지고 싶었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4살 때 동생이 태어난 이후, 저는 언니가 되어야 해서 '애교를 금지'당했습니다. 귀여운 척도, 생떼도 모두 금지. 36년 동안 거세당했던 애교를, 토끼 인형이 갖고 싶은지 알아주는 남편에게 쏟아내고 있습니다. 투정 부리고 툴툴거리며 삐져도 남편은 귀엽다고 해줍니다. 참 고맙습니다. 어린 시절을 다시 살게 해 주어서요.
혹시 여러분도 저처럼 어린아이 시절을 온전히 살지 못한 채 지금까지 아파하고 있나요? 아니면 정말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동심에 빠져들어 그때를 추억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어린이의 말>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아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세계를 온전히 지켜주고자 경청하고 기록하는 저자의 모습을 통해 '내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실 수 있을 거예요. 또한 조그마한 몸집과 큰 마음으로 살아가는 어린이들을 더 사랑하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오미의 기쁨 도서관 나오미였습니다.
좋은 책과 함께 평안한 시간 보내세요.
◆ 북 큐레이션 '나오미의 기쁨 도서관'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9779
◆ 나오미의 헤드라잇
https://m.oheadline.com/articles/DgkLe5jC0yzS4-IErqFgHg==
◆ 나오미의 프립 <자유를 찾아가는 글쓰기> 시즌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