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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례식 1

by 김효주

오늘 나를 장례 지내려 한다.



아빠 장례를 치르며 울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펑펑 울었다.

내가 너무 이상했다.

엄마가 돌아가셔도 눈물 한 방울 안 날 거 같다.


어린 시절부터 공감을 받지 못하고 자라면 나를 신뢰할 수 없게 된다. 넘어져서 무릎이 깨져 피가 나고 아픈데 엄마는 '우리 나오미 뒤뚱거리느라 또 넘어졌네.'라며 놀리셨다. 아빠는 빨리 걷지 못하는 나를 빠른 걸음으로 피해 달아나시며 늘 약이 오르게 만드셨다. 그러나 두 분 다 자신들이 하는 행위를 '옳다'라고 주장하셨고, 너는 '틀리다, 어리석다'라고 평가하셨다.


큰 꿈을 꾸며 살아가는 척했지만 내가 누리던 평안은 거짓 평화였다. 부모님이 핀잔을 주는 게 싫어 어떻게든 뭐라도 해내려는 노력으로 어린 시절부터 나는 '나'를 돌보지 못했다. 잦은 이직과 이사로 인해 자녀들의 교우관계, 삶, 마음이 박살이 나도 그걸 챙겨줄 만한 부모님이 아니라서 그냥 괜찮은 척, 문제없는 척하는 게 나의 적응 방식이었다.


이해되지 않던 내 부모님의 사랑. 사랑이라 느껴지지 않는다 말하면 '그걸 말해야 아느냐'며 면박을 주시는 그들 앞에서 내 마음은 숨겨야 하고 원하는 바는 말하지 않아야 가정의 평화가 유지되었다. 노력은 날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최소한의 믿음으로 학업에 열중했으나 IMF는 가정 경제를 말아먹었고, 1년 전 아빠의 호언장담에 믿어 의심치 않던 재수는 허락되지 못했다. 법대에 가서 사법고시 통과하고 판사가 되더라도 만나는 사람들이 다 죄인들이라는 점, 금융권이나 정치권의 압박으로 원하는 대로 판결하지 못하게 될 거라는 말을 대학 원서를 쓸 때 처음 내뱉으면서도 내가 가고 싶었던 대학에 가지 못하게 된다면 어떤 길을 가고 싶은 지 한 마디 상의하지 않으셨다. 이미 교대라는 특정 목표를 결정해 두었으므로.


더 이상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살아드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반항과 방황도 그들을 바꿔놓지 못했다. 아무리 아니라고 주장해도 들어주지 않았고 늘 자녀들이 못났고 모자라서 그렇다는 식의 대응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건강은 혼자 다 챙기는 척하던 아빠가 스트레스로 인해 대장암으로 돌아가실 때, 별로 슬프지 않았다. 오히려 안도했다. 더 이상 아빠로 인해 내 관계가 끊어질 위협이 없겠다는 안심이 장례식을 치르며 더 깊이 마음 안에 자리 잡았다.


엄마가 신우신염으로 입원하셨다가 신장암을 발견했을 때에도 중국으로 교육봉사를 가버린 건 엄마의 고통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1도 없었기 때문이다. 몇 주 전, 아빠 기일 날 엄마와 부딪치면서 이런 모든 것들의 원인이 무엇인지 직면해야 했다. 내 안에 작은 소망, 즉 엄마가 언젠가는 내 맘을 알아줄 거라는 믿음이 산산조각 나면서 엄마의 실체를 보고 말았다. 자신을 아껴주는 시부모님과 세상에서 제일 멋진 남편과 사는 여자라는 환상 속에 엄마는 살고 있었다. 부모님 속을 오래 썩인 것 같아 이제 그만하겠다는 말을 하려던 건데 아빠 이야기가 나오자말자 엄마는 다 들어보지 않고 또 시작했다. 무조건 아빠 편, 네가 틀렸다는 주장. 일주일 내내 혼자라 외롭지만 니들이 온다는 말을 들으면 두렵다는 이야기. 거의 매일 이모들이랑 운동다니면서 무슨 소린지.


이런 사람에게 내가 대체 뭘 그리 기대했는지. 20년의 방황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것과 내가 바라는 엄마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실망은 큰 충격을 선사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짜로 우울증이 끝날 때가 되었다고.


내 우울의 기반을 찾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죽은 나'를 바라보는 슬픔이 삶의 전반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타인에 대한 기대와 실망은 할 만큼 했다 자부했는데 잘라버릴 수 없는 엄마와의 관계를 직면하지 않았던 것이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 조금 전, 나는 내 장례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회복과 치유가 일어나더라도 과거로 나는 돌아갈 수 없으며 내 인생에서 '어려도 되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이제 적극적으로 애도하고 마무리하려 한다. 한동안 아프겠지만 그것도 서서히 괜찮아질 것 같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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