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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장례식 2

by 김효주

(스크롤 압박이 있습니다.)


장례식 계획.


[식순]

1. 시작

2. 애도문

3. 소망의 말씀

4. 기도문

5. 끝


[대본]

1. 시작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고 나오미 소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먼저 성인 나오미의 애도문 낭독이 있겠습니다.


2. 애도문

애도문 낭독을 맡은 성인 나오미입니다.

애도는 두 개 파트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부모님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엄마, 내가 13개월 되었을 때 말을 겨우 하고 겨우 걸었다고 늦되다고 말했던 것이 참 부끄러웠어. 평균치인데 그 정도면 무난하잖아. 13개월이 아니라 33개월에 말을 했어도 말을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해줬으면 했어. 걷는 내가, 말하는 내가 부끄러웠거든.


엄마, 내가 교회에서 예배드리다 집에 가자고 보채서 데리고 나와서 어두운 데서 뺨을 때렸다고 자랑스럽게 말했지? 엄마가 깡패야? 애를 왜 패? 예배 시간에 어쩔 수 없이 인형처럼 앉아 있는 내가 좋아 보였어? '집에 가고 싶구나' 말해주면 얼마나 좋아. 어린아이가 어른 예배를 어떻게 견뎌?


엄마, 세 살 때 반찬 투정한다고 어른들 다 먹을 때까지만 기다려준다고 하고 안 먹으니 내 밥을 다 개한테 부어주었던 이야기 좀 그만해. 쪽팔려. 아이가 반찬 투정할 수도 있지 세 끼나 밥 안 주고 내가 반찬투정 안 하는 아이가 되어서 좋았어? 나는 엄마가 계모 같았어. '다른 반찬이 먹고 싶구나. 뭐 먹고 싶어?' 말해 주면 좋잖아.


엄마, 고모가 사 주신 노란 운동화, 그거 잘 안 챙기면 견이가 망가뜨린다고 했는데 내가 그냥 뒀다가 결국 견이가 뜯었을 때. '거 봐라. 엄마가 말했지?' 이건 대체 뭐 하는 거야? 세 살짜리가 자기 운동화를 어떻게 챙기냐? 견이 목줄 20cm를 줄일 생각은 왜 안 해? 왜 내가 항상 잘못이야? 엄마는 바뀌지 않으면서 왜 맨날 나한테만 뭐라고 해? '운동화가 망가져서 속상하지. 다음에 엄마랑 더 예쁜 거 사러 가자. 견이 목줄도 손 보자.' 왜 엄마는 이런 거 못해?


엄마, 동생이 태어난 이후로는 나한테 언니니까 애교, 생떼, 떼쓰기 왜 모두 못하게 했어? 4살이면 아이야. 완전 애기라고. 동생이 태어난다고 내가 어른이 되진 않잖아. 어떻게 그래? '나오미야, 동생이 태어나서 엄마가 동생 돌보느라 나오미한테 신경 많이 못 써줘서 미안해.'라고 해주지 그랬어. 그럼 내가 도와줬을 텐데.


아빠, 6학년 때 내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서 대문 밖에 기다리고 있는데 왜 그냥 돌려보냈어? 며칠 전에는 데리고 와서 놀라고 그렇게 호언장담 했잖아. 어떻게 그래? 내가 그날 얼마나 친구들 보기 민망했는지 알아? 차라리 말을 말지. 잠시라도 들어오라고 하면 좋잖아. 과자 2 봉지라도 뜯어서 물이랑 먹고 가도 좋잖아. 어떻게 안방에 누워있는 그대로 몸 한 번 일으키지 않고 옆으로 빈듯이 가라고 성질 내? 나는 대체 아빠한테 뭐야?


아빠, 대학교 갈 때 왜 쓸데없는 소리 해서 나 속상하게 했어? 법대 가서 판결하는 이야기를 왜 했어? 어차피 우리 집에는 돈이 없어서 교대 아니면 보낼 상황도 아니었잖아. 그냥 '나오미야, 미안하다. 정말 법대 보내주고 싶고 재수도 시켜주고 싶은데 IMF 때문에 지금 먹고살기도 힘든 상황이야.'해도 되잖아. 그럼 내가 법대 간다고 하겠어? 재수한다고 하겠냐고. 왜 쓸데없는 이야기 해서 내 모든 노력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만들어. 왜?


엄마, 왜 엄마는 엄마가 자랑하고 싶은 이야기만 해? 왜 다른 사람과 진실된 소통을 못해? 왜 이모들 한테도 포장을 해? 엄마가 그렇게 못났어? 왜 잘난 모습만 보여줘야 해? 그럼 엄마는 맘 편히 이야기할 사람이 없는 거야? 왜 어린 나한테 집안 이야기를 다 쏟아서 감히 음악 배우고 싶다는 말도 못 하게 해? 왜? 엄마는 어른이잖아. 왜 아이한테 부모노릇을 시켜? ''


아빠, 왜 아빠는 우리보다 친척들이 더 소중해? 그럴 거면 왜 낳았어? 이렇게 대할 거면 낫지 말지 그랬어? 공부 열심히 하면 뭐 하냐? 투게더 하나, 양념통닭 하나. 췟 그게 뭐냐. 진짜 공부할 맛 안 난다. 어째 그러냐. 진짜 김샌다. 하.. 진짜 아빠는 나를 낫지 말아야 했어. 이게 뭐야. 췟.


엄마아빠를 떠올리고 속상했던 일 이야기 하는 것도 생각보다 피곤하네. 솔직하게 말해도 되는 걸 말해주지 않은 것, 나의 관계들을 소중하게 여겨주지 않은 것, 어린아이에게 부모를 요구한 것,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게 하고,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은 해주지 못한 당신들은 몹쓸 부모다.


거짓 화평을 위해 참아왔던 것을 내가 이제 그만하려고 해. 어린 시절을 송두리째 빼앗겼지만 더 이상의 인생은 낭비하지 않으려고. 어린 시절의 나는 당신들이 죽였지만, 지금부터는 내가 나를 지키고 보호하려고.


아프다가 죽어버린 아빠.

아프다고 자기만 중요하게 여기는 엄마.


이제 그만하자.

당신들을 미워하길 그만할 테니 내 에너지도 그만 뺏아가라.


평생 해주지 않은 게 해준 것보다 더 많으면서 뭘 그리 잘 났다고 난리냐.


아플 때 아프겠다 위로해주지 않았고

슬플 때 그 마음이 슬픈 거라 말해주지 않았고

속상할 때 그런 일로 속상하지 말라고 다그쳤고

설렌다는 게, 몽글거리는 게 뭔지 알려주지 않았고

나의 괴로움에 동참하지 않았고

모든 것은 내 잘못이며

모든 것을 당신들 맘대로 조종하려 했던 그 모습.


얼마나 유치하고 못됐고 가증스럽고 더럽고 악하냐.

그런 주제에 뭘 잘했다고 떠들어 떠들긴.

이제 그만해.

쉿.


다음으로 저를 장례 지내며 적은 애도문입니다.


나오미야.

수고 많았어.

아무도 몰라줘도 엄마만큼은 알아주길 바랐던 그 순수한 희망을 절대 이룰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네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얼마나 아팠는지 나는 알아.


네가 넘어졌을 때 호호 불며 안아주길 바랐고

뭐든 잘 먹고 잘 커서 그게 제일이라고 해주길 바랐고

어린아이라 어른들의 행사에 참여하는 게 어려울 때 공감해 주길 바랐고

반찬투정하다 세 끼나 굶었을 때 그래도 다른 반찬을 해주길 바랐고

노란 운동화 같은 걸로 어린 내가 신경 안 쓰고 싶었고

동생이 태어나더라도 어린아이는 어린이답게 행동할 수 있게 해 주길 바랐고

친구들 놀러 와도 된다고 했을 땐 그렇게 당연히 해주길 기대했고

법대 보낼 형편이 못된다고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듣길 바랐고

법대가 아니라면 다른 것을 해보고 싶은 게 있는지 물어봐주길 바랐고

엄마가 나 외에도 다른 사람들과 솔직한 대화를 해서 내 부담이 줄어들길 바랐고

아빠가 친척들보다 가계를 먼저 생각해 주길 바랐고

나에게 과외나 학원의 기회를 더 주었길 바랐어.


가면을 쓰고 당신들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한 것을 이제는 다 알아버렸어.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모른 척해줬던 거야. 이제는 완전히 다 알아버려서 모른 척해줄 수가 없네.


이제 죽은 나를 장사 지내려고.

어린 시절의 내가 돌아올 수 없듯

상냥하고 친절한 부모님은 내게 없는 거잖아.

늘 쓸쓸하고 황량했던 시절이었어. 당신들과 함께 있는 건.


이제 오늘을 기점으로 덜 슬퍼하려고.

많이 슬퍼하는 것도 괴롭더라.

서서히 이 슬픔도 흘러가겠지.


이제 나도 어른이니까.

선택권이 있었다면 절대 당신들 밑에 자라지 않았을 거야.

친구로도 삼고 싶지 않은 당신들이야.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알고

또한 지금은 다 깨닫지 못한 것을 나중에는 알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받아들이려고 해.


어린 나는 죽었지만

지금의 나는 살아있으니.

오늘부터는 살아있는 나로서 재미있게 살아보려고.


한동안 당신들을 잊고 지낼게.

그게 너무 좋네.


3. 소망의 말씀

<내가 함께 있으리라>

요한이서 1:1-3

장로인 나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로 말미암음이로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인생을 살다 보면 참 사는 게 힘들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고단하고 피곤하여 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을 때도 있고 의지할 곳이 없어 기대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영원히 너희와 함께 하리라'라는 뜻으로 임마누엘이라는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제 삶에는 부모의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사랑받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억지로 애쓰던 지친 소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녀는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고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그 소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소녀는 지금 살아있습니다. 순서를 밟아 자라지 못해 마치 아기가 화장을 한 듯, 개구쟁이가 머리를 잘라버린 듯 이상한 몰골을 한 소녀가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한 채 그렇게 살아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하나님을 몰랐고 의지할 곳도 없어 부모님 밑에서 억지로 살다 저는 죽었습니다. 이제는 어른이 되었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나의 진짜 아버지, 기댈 수 있는 분, 나를 사랑하는 분,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의 원인과 의미를 아시는 분. 그분이 계시기에 그분이 내 옆에 계신다는 것을 믿기에 적극적으로 예전 일을 흘려보내려 합니다.


공감받지 못했던 삶

다른 일반적인 부모들보다 차갑고 이기적이었던 엄마와 아빠로 인해 괴로웠던 인생

이런 모든 것들이 끝났습니다.

저는 죽었고

또한 저는 살았습니다.

예수의 생명이 저를 살렸고 이제는 엄빠의 사랑을 갈구하며 거지 같이 살던 삶을 포기하고 예수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앞으로 며칠은 더 아플 수도 있고

눈물이 날 수도 있겠지만

소망을 붙잡고 일어서겠습니다.


'함께 있으리라'라는 말씀을 찾아보면 항상 두려움에 휩싸인 사람들을 먼저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시며 같이 있어주시겠다 하셨습니다. 지금 제게 그 하나님이 필요하고, 또 그렇게 해주실 것을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공감의 왕

우리의 죄까지 안으시는 사랑의 주

이제 그분을 위해 살겠습니다.


4. 기도문


하나님, 감사합니다.

엄마, 아빠로 인해 괴로웠던 삶을 슬퍼할 수 있는 지금, 직면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나의 아팠던 과거를 흘려보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픈 마음을 바라보고 돌볼 수 있는 지금 이런 작업을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많이 아팠고 괴로웠지만

진짜 아버지의 좋으심을 누릴 수 있는 지금

애도에 빠지지 않고 소망을 붙잡을 수 있는 오늘

나를 장례 지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를 살리신 예수를 위해

내 삶을 드리겠습니다.

함께 아파해주시고 함께 즐거워해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 지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어깨에 무겁게 눌리던 것들을 다 내려놓고

예수의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이제 뒤돌아 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5. 끝

이것으로 소녀 나오미의 장례식을 마칩니다.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주 어린 소녀의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에 의한 상처와 회복에 관한 글이므로 다소 과격한 표현이 보이더라도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혼자 읽고 장례식 하고 작가의 서랍에 고이 간직하려했는데 동참해주시겠다는 분들이 계셔서 큰 퇴고 없이 발행해봅니다.


공감해 주셔서

어제와 오늘의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어요!

사랑합니다^^ 그리고 정말 고맙습니다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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